9-27. 얼마 후,
엄마와 동주는 몇 가지 세간을 리어카에 싣고 이사를 했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눈 만 뜨면 자꾸 싸워서 서로 안 보기로 한 것 같았다.
감포에서 더 시골로, 빈 집으로 찾아 들었다.
며칠동안 머리를 싸매고 누워 있던 엄마가 젓갈류, 마른생선, 미역, 멸치따위를 큰 함지에 챙겨 머리에 이고 이 마을 저 마을, 장돌배기로 나섰다. 한 번 집을 나서면 일주일이나 열흘이 지나야 집에 돌아왔다.
돈을 버는 목적인지 속 터지는 홧병 때문인지 여기 저기 떠돌아다녔다.
동네 사람들은 엄마가 바람이 들었다고 했고 바람이 났다고도 했다.
동주는 그래도 좋았다. 화 내고 때리지 않아서 좋았고, 엄마가 돌아올때면 가끔씩 동주 신발이나 옷을 사와서 좋았다. 어느 때는 공책과 연필도 사왔다.
"순자 집에 가 봐라 - - 순자가 핵교서 공부하던 책 좀 달라해라 - - 내가 다 말 해 놨다. 핵교는 안 다녀두 글씨는 알아야 혀. 지 이름도 못 쓰면 바보 천치가 되는 겨. 알어?"
다정하게 말 할 줄 모르는 엄마였다.
무슨 말이든 윽박지르던지 화를 내면서 말을 했다. 엄마가 무슨 말을 하든 동주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을 안 한다고 또 한 번 쥐어박혔다. 엄마가 쥐어박고 때리는 건 싫었지만 이상하게 서럽지 않았다.
'우리 엄만 원래 그래 - - '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았다.
엄마가 사놓고 간 쌀이 떨어지면 이 것 저 것, 옥수수도 쪄 먹고 감자도 삶아 먹고 하다가 그래도 먹을 것이 없으면 걸어서 외할머니 집에 갔다. 대놓고 반기지는 않았지만 외할머니는 빙빙 집 주위를 돌고 있는 동주를 불렀다.
"수제비나 해 먹자 - - 들어 온나"
동주는 냉큼 들어가서 말했다.
"할머니, 호박 따오까예?"
밥을 다 먹고도 밍기적대며 일어서지 않는 동주를 보고 외할머니는 쯧쯧 혀를 찼다.
"니 어매 언제 나간겨? 안즉 올 때 멀었지? 집에 가지 말고 할미랑 여 있자 - - 밤에 할미 다리도 주물러 주구 - - "
동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깜짝 놀라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 "
"어이구 - - 모다 내 업보다 - - 업보야"
업보가 뭔지 몰랐지만 동주는 좋았다. 할머니 손을 만지면서 잘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따뜻한 누군가를 만질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걸, 동주 손을 쳐 내던 엄마보다 할머니가 백배는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