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 동주가 16살 초겨울
찬바람이 쌩쌩 불던 날, 외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외삼촌이 와서 엄마에게 집을 비우라고 했다. 당연히 아들이 물려받는 거라면서 약간의 돈을 엄마에게 주었다. 엄마와 동주는 큰이모가 살고 있는 동네로 이사를 왔다.
엄마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매일 술을 먹고 자고 깨어나면 또 술을 먹고 잤다. 밥도 먹질 않고 동주에게 화만 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엄마도 많이 아팠다. 그동안 장돌뱅이로 무거운 짐을 이고 힘들게 걷고 또 걸어 다니느라 골병이 들었다. 엄마는 밥을 먹지 않았다. 하루종일 술기운으로 버텼다. 평생 미워하던 외할머니가 죽고나니 이젠 스스로를 미워하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고 자신의 불찰이다. 애초에 시작은 자신이었고 자신 때문에 모두가 불행했다. 이제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동주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빨리 죽는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남을 동주를 생각하니 동주를 강하게 만들어야 했다. 눈 앞에 어른거리는 동주를 닥달했다. 이건 왜 이러냐? 저건 왜 저러냐? 넌 그게 뭐냐? 넌 기집이 왜 그렇게 된퉁 맞냐? 곰살시러워도 시원찮을 판에 웃지도 않냐?
그즈음 동주는 날이면 날마다 엄마한테 혼이 났다.
서 있으면 그렇게 서있다고 지청구를 들었고 앉아 있으면 지금 태평하게 앉아 있을때냐고 또 혼이 났다. 가만히 있으면 어매한테 한 소리 들었다고 입이 툭 튀어나와 있느냐고 말을 듣고, 웃을라치면 밸 없는 년처럼 실실댄다고 또 야단을 들었다. 동주는 어떻하든 엄마 맘에 들고 싶었지만 아무리 해도 엄마 비위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럴때면 혼자 동네를 쏘다니며 제 맘을 달랬다.
야단치는 엄마라도 옆에 있어주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고 또 했다.
혼자가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었다.
엄마는 이모네 아이들이 다 배운 책을 얻어오라 했다. 순서도 없이 4학년 책을 먼저 배우고 2학년 책을 나중에 배우기도 했다. 엄마가 배워 주기도 했고, 사촌동생이 배워주기도 했다. 그냥 엄마가 한 번 읽어주면 따라 읽고, 동생이 읽어주면 따라 읽었다. 잊지 않으려고 중얼중얼, 웅얼웅얼 외고 다녔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동주였지만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 혼자서 산수를 깨우쳤다.
"언냐 - - 구구단 몬 외면 바보란다 - - 슨상님이 - "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써 먹는 줄도 모르고 구구단을 외우고 외웠다. 책도 읽었다. 아무 책이나 신문쪼가리에 있는 글자라도 외우고 공부했다. 비슷하게 써 보려고 아무데나 자꾸 끼적거렸다. 동주는 선생님 앞에서 공부를 배우고 싶었다. 엄마한테 말 했지만 대번에 욕만 들었다.
"기집이 핵교는 무신 - - 지 이름자 쓰고 읽을 줄만 알면 되는 거지 - - "
"이모네 명자두 댕기고 영순이두 댕기는디 - - "
"그 집은 남정네가 있잖여? 돈 벌어 주는 애비가 - - "
동주는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