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7.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 하는 이 심정, 동주는 그 답답한 마음을 어쩔줄 몰랐다.
이제부터 아무 생각 안 하고 일만 하기로 맘 먹었다. 돈 만 있으면 두려울게 없다.
남편이 집에 오는 날이면 무슨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일을 하러 나갔다. 집에 있는 애들이 걱정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 하는 곳으로 애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남편이 나타나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다.
"너 혼자 얼마나 잘 먹구 잘 사는지 두고 보자 - - "
패악을 부리고, 남편은 집을 나갔다.
그 일이 있은 후, 한 달 두 달이 지나도 남편이 나타나지 않았다.
동주는 속으로 이젠 됐다고 - - 남편도 이젠 맘을 접었을거라 생각했다. 곧이어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나타나기 전에 집을 옮길 생각을 하다니 - - 스스로 생각해도 우습기만 했다.
이사를 한다해도 찾으려 맘만 먹으면 못 찾을리 없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인연을 끊고 싶었다. 처음부터 맘이 가지 않던 사람이다.
새초롬한 눈초리에 의심이 많고 속을 알 수 없었다. 술이 들어가면 쓸데없는 말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무리 정을 붙여보려 애썼지만 얼굴을 보면 없던 정마저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새끼를 셋이나 내질렀으면 정분이 나지 않았겠냐 말 하지만 그건 엄마가 모르는 사정이 있다.
한 번도 보드라운 맘으로 동주를 품어 준 적이 없었다. 싫다는 동주를 강제로 찍어 누르고 제 욕망을 채웠다. 임신한 동주는 절대 곁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가 젖을 떼고 걸음마를 시작하면 남편은 호시탐탐 또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젠 싫었다. 이미 자식이 셋이다. 잘 입히고, 잘 먹이고 공부까지 시키려면 앞만 보고 살아야 할 것이다. 남편은 믿음을 가질만한 위인이 되지 못한다. 오롯이 동주 몫이 될 것이다.
남편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다.
금슬 좋은 어른을 본 적 없는 동주는 부부지간 애틋한 정이랄까 그런 걸 모르기 때문인지 별로 아쉽지도 애석하지도 않았다.
"이젠 안 그럴께 - - 니가 싫어하믄 - - "
반 년 만에 이사한 집에 나타난 남편이 하는 첫 소리였다.
동주는 쓰다달다 말 없이 묵묵부답. 발끝만 내려보고 서 있다. 방으로 들어오라고 아니면 마루 끝에라도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밥 때가 지났는데 밥은 먹었냐고 묻지도 않았다.
이젠 안 한다는 남편의 말에도 뭘 안 하느냐 그럼 앞으로 잘 살아보자 당신이 그런 결심을 해줘서 고맙다는 둥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당신 허고 싶은대로 허고 살어 - - 난 애들허고 살테니 - - "
겨우 기어드는 목소리로 웅얼댔다.
사납게 동주를 노려보던 남편은 가래침을 카악 - 뱉어내며 돌아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