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7. 봄에 새 집을
지어놓고 해를 넘겼다. 집을 비워 놓으면 안 좋다고 해서 동주는 새 집으로 세간을 들였다.
번쩍번쩍 자개장롱을 맞췄다. 안방 크기에 맞추려고 기술자를 불렀다. 부잣집에 가면 의례 안방에 떡 하니 있는 자개장롱이 그동안 내심 부러웠다. 방 마다 커텐을 해 달고 그릇을 사들였다.
마당을 가꾸고 대추나무도 직접 심었다. 언젠가 대추가 많이 열리면 손자들이 따 먹으리라 - - 동주는 일 다니는 틈틈이 집을 돌봤다.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궜다.
가끔 엄마 생각이 났지만 보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가 몸이 아파 일을 못 한지 벌써 여러 해였다. 동주는 그동안 같은 동네 사는 일용엄니를 통해 얼마간 돈을 보냈다. 생각해 보니 씩씩하게 장사 다닐때가 좋았다. 약해진 엄마가 눈만 시퍼렇게 살아있는 모습이 동주는 견디기 불편했다. 더구나 종수를 생각하면 원망이 앞섰다. 엄마가 외할머니한테 그랬듯 동주 또한 엄마를 용서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몸이 아픈 엄마가 보고 싶으니 다녀가란 말은 끝까지 하지 않은 것처럼, 동주도 새삼 엄마가 그립거나 마음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 외할머니는 보고 싶었다.
외할머니도 동주에게 그다지 살갑지는 않았지만 '어이구 불쌍한 내 강아지' 하며 냄새나는 치마폭으로 감싸안던 기억이 남아있다. 측은하게 바라보던 눈 길이 생각나기도 했다. 이상하게 엄마하고 단 둘이 살던 세월이 짧지 않았지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엄마와 살던 시간은 오롯이 동주 혼자 견뎌낸 시간이다.
처음부터 동주 걱정따윈 내팽개친 엄마였다. 언제나 혼자만 힘들었고 혼자만 슬펐고 혼자만 가여웠다.
엄마 맘속엔 동주는 없는 듯 보였다. 동주의 어린시절은 춥고, 무섭고, 배고프고, 매 맞고, 무언가에 절절매던 기억, 혼자 울던 기억뿐 - - 꿈에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자식을 키우면서 동주는 종종 길을 잃었다.
이게 맞는건가? 아닌가? 세워놓고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 하는건가? 끌어안고 토닥토닥이 맞는건가?
모른 척 해야 하는건가? 꼬치꼬치 따져 묻고 시시비비를 가려야 하는건가? 심지어 웃어 넘길 일인지 화낼 일인지조차 분명히 알지 못했다. 딸을 키울때는 어릴 적 자신을 떠올리며 이렇게 저렇게 해 보려했지만, 아들을 키우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어렵기만 하고, 알 수 없었다.
결국 동주가 내린 결론은 '돈이나 열심히 벌자' 였다.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학교에 보냈으니 선생님이 잘 가르치고 이끌어 줄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종수를 내보내고 때때로 가슴이 쓰리고 묵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