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

by 김정욱

25-27. 몇 년이 지났지만


말 수 적은 며느리는 동주를 어려워했다. 동주는 며느리와 가깝게 지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차라리 안 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시어머니 노릇을 할 줄 몰랐던 동주는 아들 며느리에게 뭘 요구할 줄 몰랐다. 또 다시 혼자된 기분, 맘이 아프고 자꾸 눈물만 났다.


첨에 집을 나가겠다고 말을 꺼내자 광수가 화를 냈다. 며칠동안 말도 안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겠냐고, 불효자라고 손가락질 할 거라고 했다.


'넘들이 무슨 소용이람. 내가 죽겄는디 - - '


결심을 하고나자 바로 방을 구하러 다녔다. 그래도 멀리 갈 수 없었다.

아들이 보고 싶으면 바로 올 수 있도록 버스로 다섯 정거장 정도면 되었다. 마침 담배표 딸린 점방이 나왔다. 작은 슈퍼인데 쌀이랑 잡곡도 팔았다. 그당시 집에 농사가 없는 사람들은 쌀도 조금씩 사다 먹었다. 먹고 사는 일이 힘든 때였다. 점방 보던 영감이 죽고 새 임자를 찾고 있었는데 돈은 모자랐지만 여기저기서 빌렸다. 일 다니던 이 곳 저 곳 사람들은 동주를 신임했다. 일 잘 하고, 셈 정확하다고 돈을 잘 빌려 주었다. 동주는 빌린 돈을 갚을땐 반드시 이자를 쳐서 돌려주었다.


며느리가 손자를 낳았다. 광수가 많이 좋아했다.

광수는 점점 점잖아지고 듬직해졌다. 동주에겐 다정하지도 살갑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광수는 철도 일찍 들었지만 이젠 애비가 된 것이다. 동주는 어쩔 수 없이 또 종수 생각에 가슴 한 쪽이 쓰라렸다.

이렇게 모두가 기분 좋은 날, 좋은 시간에 그 아인 어디 있을까?

그냥 나가라고만 할 것을 - - 왜 아들도 아니라고 암껏도 아니라고 했을까 - - 자신의 발등을 찍고 싶었다. 입을 짓이기고 싶었다.

엄마의 눈길을 받고 싶어 애닳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어떻하면 엄마가 좋아할까 엄마 맘에 들까 그것만 생각하고 동동거렸던 춥고 추웠던 시절 - - 항상 엄마 등만 보고, 뒷모습만 보던 어린 동주.

종수도 그랬을까? 한 번도 저를 보고 웃어주지 않는 동주를 기다리고 기다렸을까? 다정한 눈맞춤을 바라고 또 바랬을까? 왜 그렇게 종수가 미웠을까? 어린애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왜 한 번 웃어주지 못했을까? 안아주지 않았을까? 여리고 보드랍던 아이가 사납고 거칠게 변하도록 난 무얼 했을까?


광수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막내딸도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이루었다.

종수는 여전히 소식이 없다. 집을 떠나면서 모든 인연을 끊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난 모양이다.

빈 손, 빈 몸뚱이로 나선 아이. 세상이 없는 사람에겐 얼마나 가혹한 곳인지 동주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종수 생각을 하면 가슴이 조여드는 통증이 나타났다.


외할머니가 말하던 '업보'가 이런 것인가?

'업보'가 죄라면 얼마든지, 당연히 자신이 벌을 받겠다고 생각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미완의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