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생

by 김정욱

27-27. 어느 날 늦은 밤,


가게에 강도가 들이닥쳤다. 안면이 있는 새파란 동네 양아치였다.

휘두른 칼에 얼굴을 많이 다쳤다. 작심하고 두 눈을 칼로 그었으나 천만다행, 눈 하나는 실명을 면했다.

얼굴과 몸에 깊은 상처를 입고 핏물이 강처럼 흘렀다. 동주는 '이렇게도 죽을 수 있구나 - - ' 새삼 생명의 덧없음을 느꼈다. 얼굴 치료, 눈 치료를 하러 전문병원으로, 대학병원으로, 서울로, 꼬박 이 년을 매달렸다.

결국 한 쪽 눈은 구하지 못했다.


'아 - - 내가 벌을 받는구나 - - '


내가 세상에 내놓은 자식을 끝까지 보듬지 못했으니 - - 회한의 눈물을 쏟았다. 동주는 몸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 속에서 깜깜한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당연히 그동안 푼푼이 모아둔 돈을 모두 날렸다. 삶에 의욕을 잃고 허무하고 허무한 맘이 되어 하루를 한 달처럼, 한 달을 일 년처럼 속절없이 늙었다. 악몽같은 시간은 저 혼자 흘러갔다.


70을 넘기고 80을 넘었다. 새벽이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지고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배가 고파졌다.

손자들이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결혼을 했다. 막내 딸은 50을 갓 넘긴 한창때 장 서방이 죽었다.

알고보니 그 집안 내력이란다. 딸 셋, 아들 하나를 남기고 사위가 죽었으니 딸년은 허덕허덕 애들 공부에, 뒷바라지에 발꿈치가 닳았다. 제 어미 피땀으로, 제 스스로 노력으로 큰 외손주, 외손녀도 다들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증손주 소식이 들렸다.


동주는 제 스스로, 제 각각, 잘 사는 자손들을 보면 대견하고 고마웠다.

다들 모자라면 모자란대로 잘 커 주었다. 형제끼리도 무던하고 부부지간 정도 나쁘지 않았다.

동주는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낼 모레면 동주 나이 90이다.

요즘은 전에 없이 낮잠이 자주 쏟아진다. 꿈 속에서 동주는 울고불고 어린애가 되기도 하고, 애들을 집에 놔두고 일 다니는 어미가 되어 밭으로, 식당으로 공장으로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일꾼들 뒷바라지에 밥 하고 국하고, 집을 짓는다고 동동 거리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잠을 깨면 중얼거렸다.

그때는 왜, 그 사람이 그렇게 싫었을까?

그때는 왜, 종수가 그렇게 미웠을까?

그때는 왜, 도대체 왜, 참을 수가 없었을까?

좀 더 견뎌보고 참아보지 않았을까?

엄마에게 버림받고 춥고 무서운 어린시절을 보낸 자신이 왜 종수 맘을 돌아보지 못했을까?

왜 종수 눈물을 보지 못했을까?


동주는 오늘도 새벽이 되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 하루도 또 살아질 모양이다. 세상에 태어나 이룬 것도 없으나 이루지 못한 것도 없다.

이제는 빨리 죽고 싶다는 소원 하나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 속에 품은 소원 하나, 종수를 한 번 만나고 싶을 뿐이다. 동주는 길게 이어지는 자신의 인생은 아직 풀지 못한 숙제 하나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끝.




오 동주님의 인생.

첨부터 쓰려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동주님과 만난 시간, 5년 1개월. 작년에 급작스런 이별을 하고 한동안 허무해진 맘을 잡지 못했다. '이별하는 방식'에서 고백했듯이, 당신 뜻대로 이별한 건 아니었다. 20 몇 년 살아오신 당신 집에서 끝까지 살고 싶다 하셨는데 - - 이런저런 사정으로 요양원으로 떠나셨다.

아 - - 이래도 되는건가? 한 사람 인생이 마지막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결정되고, 옮겨지고, 마무리가 되는게 - - 쓸쓸하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 - 그랬다.

동주님은 조용한 성격, 감정표현도 적고, 웃음도 적으셔서 슬며시 웃다 마시거나 먼 산을 보셨다.

동주님은 어제, 그제 일은 잘 잊으시는데, 놀랍게도 70 - 80 년전 일은 어찌나 세밀하게 기억하시는지 - - 5년 동안 같은 얘길 듣고 또 듣고 들어도 - - 여전히 생생했다. 들을때마다 가슴 아파서 그만 하시라고, 잊으시라고, 다 잊으시라고 말 하고 싶었다. 그러나 동주님의 그 맺힌 맘을 그렇게라도 풀어내시라고 - - 듣고 또 들었다. 그렇게 가슴 한 쪽 켜켜이 쌓인 동주님 이야기, 동주님 인생, 어쩌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 -

어느 날, 쓰자 - - 써 버리자 - - 그리고 휘리릭 - -

가능한, 들은 얘기만. 팩트만. 내 상상력은 줄이고, 줄이고 - -

쓴다고 무어그리 달라질까? 그래도 동주님 인생이 이렇게라도 남겨지길 - - 동주님 인생이 이렇게라도 - - 동주님 자취가 남겨지길 - - 먼지처럼 티끌처럼 사라지기 전에 - -

그래도 쓰고나니 이제야 동주님을 보내드린 것 같다.

이제라도 동주님 여생이 좀 느긋하고 맘 편하시길 - - 어쩌면 - - 지금쯤 - - 아마도 - - 희노애락 세상사 인간사 모두 벗어나 해탈의 경지에 오르셨을지도 모르는데 - - 나 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런거죠?


동주님이 잘 하시는 말씀 '암껏도 아녀!'

'진짜요?' '정말요?' 물으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암껏도 아녀!'

별일 아닌 것처럼 시침을 떼십니다. 하하.

좋은 생각만 하려구요. 이제부터 - - 부디 동주님도 그리 하시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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