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두 번의 생

by 김정욱

10-12. 재운은 명자를 꼬옥 끌어안고 토닥였다.


"이제 괜찮아. 나한테 욕 하고 싶은 거 다 해. 패 주고 싶으면 패. 그래도 되. 나한테 다 해. 내가 나빴어. 그래 겁쟁이었어. 그래 맞아. 맞아. 니 말이. 나 실컷 원망하고 욕해. 그래서 니 맘이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해"

"이 바보야. 넌 왜 아프고 이 모양이야! 잘 살지 않구! 날 보란 듯이 떵떵 거리구 잘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이 번 생은 그래도 널 만나서 댜행이야. 널 많이 좋아 했구 사랑 했구. 그거면 됐어. 음- -그거면"

재운은 우리가 그렇게 끝나고 고향을 떠났다.

고향뿐 아니라 가족도, 친구도,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라졌다.

산골소년이던 그는 갯가로, 바다로, 섬으로 떠돌았다.

가슴에 멍이 도무지 삭아들지 않아서 어디에고 정착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착하고 순박한 여인을 만났지만 그 맘을 받아 줄 수가 없어서 세상을 겉돌기만 했다.

뒤늦게 몸이 아파, 어찌 어찌 아는 신부님 소개로 이곳에 들어왔다

병원은 단 한 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갔다.

시한부 반 년이었지만 벌써 일 년 넘게 거뜬하게 살고 있다.

마음의 짐을 모두 내려놓고 보니 일상이 너무나 가벼워졌다.

그저 눈을 뜨면 아침 햇살이 고맙고, 새소리가 반갑고, 어르신들의 잔소리가, 타박이 정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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