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매일 쌈박질 고성방가를 일삼는 진씨 영감도 애틋하고 안쓰러웠다.
아마 진씨 영감도 한 평생 풀지 못한 애증이 가슴 속 깊은 곳에 똘똘 뭉쳐 있을 터, 재운은 가여운 생각에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 돌아보게 되었다.
"명자야. 너 그거 기억 나? 니가 하도 쫑알쫑알 대서 내가 쫑달새라고 했던 거?"
"난 지금 너무 말을 안 해서 그게 문제래. 우울이라는 깊은 우물에 빠져 있대"
"그럴리가? 그 많던 말들은 어쩌고?"
"글쎄, 정작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지 못하게 되니까 다른 말들은 하기 싫더라구. 다 시시해"
"난 한 때 거칠게 살았는데, 그 때 생각으론 양아치가 되고 싶었다고나 할까. 세상 막 되는대로 살았거든. 근데 결국 양아치는 못 되더라구. 꼭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니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야! 정재운! 너 그러면 안 되잖아! 웃기지?"
"재운아. 너 나랑 병원에 가자. 널 고쳐 주고 싶어. 그래야 나도 살 거 같아"
"아냐. 명자야. 난 요즘 좋아. 잘 살고 있어. 지금처럼 평화로울 때가 없었어. 오늘 너두 보구. 더 이상 욕심내지 않을래"
"이 바보야. 또 이럴래? 맘이 가는대로 하라고! 너 살고 싶잖아! 나도 다시 만나고. 우리 이제 같이 지낼 수 있는데 먼저 죽겠다구? 이게 말이 되?"
"명자야. 날 위해서 널 힘들게 할 수 없어.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냐"
"아니라구. 바보야! 내가 살기 위해서 널 살리겠다구. 나 얼마 전에 죽으려구 약을 한 통 삼켰어. 내가 살아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너야. 바로 너! 우리!"
"우리, 이제 솔찍해도 되는 거니? 명자야? 어쩐지 난 자꾸 비겁 해지려구 해"
"재운아. 잘 들어. 우리는 먼 길을 돌아왔어. 서로 고통스럽게 댓가를 치뤘다구. 이제부터라도 우린 행복해야 되. 알았지? 약해지지 마. 절대!"
명자가 시설에 눌러 앉은지 일주일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