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수소문 끝에 장훈이 나타났다.
"당신답지 않군. 이런 일을 벌이다니"
"변명하지 않을께요. 이 사람 옆에 있고 싶어요. 못 된 년이라고 욕하고 침 뱉어도 좋아요. 당신한테는 정말 미안하구 죄송해요. 날 용서하지 말아요"
"당신 남자, 아프다더군. 나중에라도. . .나중에 돌아 온다고 말해주면 안되나?"
"그건 당신한테 더 못 할 짓이 될꺼예요. 차라리 날 버려줘요"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뭐 길래 내 결혼을 이렇게 망쳐도 되는거야? 누구 맘대로? 내가 안 된다면 어쩔 건데? 끝까지 같이 간다면 어쩔 건데?"
장훈의 부릅 뜬 두 눈에 새빨갛게 실핏줄이 터졌다. 이를 앙 다물고 주먹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명자는 눈을 감았다.
'내가 땅에 엎드려 그의 발에 매달려 빌어 볼까? 어떤 구차한 모습을 보이면 그의 자존심을 덜 다치고 날 버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순간, 얼굴에 번쩍, 온 힘으로 몰아 친 뺨을 맞고 명자는 의자와 함께 뒹굴었다.
입술로 흐르는 비릿한 핏물에 명자는 작은 안도의 숨을 쉬었다.
'끝났구나. 이제야'
명자와 재운, 두 번째 생을 맞이했다.
지난 생에는 눈물과 이별이 있었지만 이번 생에는 꼭 행복하자며 다짐했다.
비록 가까운 이별, 먼 이별이 준비 되어 있더라도 인생이란 다 그런 것이 아니던가?
"난 오늘부터 안 잘꺼야. 널 오래오래 내 눈에 담아 둘꺼야"
명자는 재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래, 명자야.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재운은 명자의 젖은 눈에 입을 맞췄다. 끝.
'세상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한 길로만 흐른다.
두 사람은 하루를 한 달처럼, 한 달을 일 년처럼 여한없이 살았다.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