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 내 나이 오십 후반.
창립 멤버로, 키워 온 회사에서 갑작스레 해고가 됐다. 동료이자 대표였던 친구는 몇 년 전부터 와병중이었고 그의 큰 아들과 함께 일을 해 온지 서너 해. 나는 아는 힘껏 일을 가르쳤다. 졸지에 당한 배신감은 차치하고 때 없이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일상에서 겉 돌았다.
아마 그때쯤부터 안사람 명희가 맘고생을 했을 것이다. 명희 말대로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대로 놓아야 하는 것을 어리석은 나는 그러질 못했다. 큰 녀석은 공부를 더 하겠다고 외국으로 나가버리고, 작은 녀석은 어쩐 일인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오면 뭐든지 마땅치 않은 저에게 이런 저런 꼬투리를 잡고 야단만 하고 성화만 하는 애비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리.
그때는 그 아이가 밖에서 제대로 지내는지 어쩌는지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자기연민에 빠져 스스로를 괴롭힐 뿐, 평생 안하던 잔소리를 명희에게 쏟아 부으며 못난 꼴을 보이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다시 일어서야 했다.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맘먹고 나니 나이가 육십을 지나고 있었다. 변두리 공단에 있는 작은 공장 야간 경비로 들어갔다. 저녁 9시에 들어가서 아침 9시에 나왔다. 좋은 시간은 다 젊은놈들 차지고 힘들고 더러운 일은 늙은이 차지였다.
내가 늙고 보니 늙은이가 세상에서 받는 대접이 얼마나 야박한지 새삼 깨달았다.
사무실에 있는 놈들은 고개 숙여 인사 하는 법이 없다. 말꼬리 잘라 먹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래저래 맘이 상했다.
알뜰하게 모아둔 돈을 야금야금 축내며 기진맥진 살았다. 가끔씩 큰 아들에게 목돈을 잘라 보내면서 언젠가 제 놈만 잘 풀리기를 바랬다. 큰 놈만 잘 풀리면 제 동생쯤은 얼마든 잘 건사 하겠거니 막연한 기대가 희망이었다.
작은 아들은 저 혼자 군대 가고 저 혼자 학교를 다녔다. 한 번도 등록금이다 생활비다 손벌려 본 일이 없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저 혼자 사느라 얼마나 고달팠을까. 부모가 있는데도 왜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맘 한 구석이 짠해졌다. 당시 생활이 어려워지고, 그 상황에 형이 공부한다고 외국으로 나가 버리고, 자신까지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던게지 이해는 하면서도 왠지 서운함도 들었다.
무릇 부모 자식 간이란 어려울 때는 서로 기대고 힘이 돼야 하는 것을, 자신이 언덕이 돼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커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