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몸이 젊을 때 같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고 돌아오면 밥 한 술 뜨는 둥 마는 둥 기진맥진 고꾸라졌다. 요즈음 업무가 가중되면서 몸이 많이 힘들어 졌다.
그날 하루, 공장에서 가공 할 부품들 수십 가지가 9시에 입고되던 것이 8시에 입고되면서 업무량이 늘었다.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제자리에 적재하는 일까지 마치고 나면 아침에 출근하는 자재과 직원 싸인까지 받아야 했다. 왜 입고시간이 빨라졌는지, 왜 자재과 직원이 하던 일을 야간 경비가 떠맡게 되었는지 물어 보지 않았다. 심드렁하게 '그렇게 됐어요' 하면 그만 인걸 잘 알기 때문이다. 자세한 설명도, 이해도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9시에 퇴근이지만 담당자는 출근해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어디 틀어박혀 담배를 태우고, 커피를 마시며, 몇몇이 어울려 시답지 않은 농담으로 킬킬대고 있거나, 변기를 타고 앉아 용을 쓰고 있겠지. 나는 불끈거리는 성질을 누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날마다 도를 닦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히 있는 사람만이 계약이 일 년 일 년 연장이 됐다.
사는 것이 하루하루 서글펐다.
분주하게 살았지만 헛 산 느낌. 인생 전체가 허무했다. 무엇을 위해 아등바등 기를 쓰며 살았는지, 무슨 영화를 보자고 큰애를 그렇게 공부 공부 몰아 세웠는지, 그깟 공부가 뭐라고 작은 놈을 나무랬는지 지나고 보니 모두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저 다정하게 평화롭게 살 일이다.
맛있는 거 나눠 먹으며 안아주고 토닥이고 웃어주고 그저 믿어 주고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될 것을. 젊은 날 자신의 욕심으로 자식들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 들었으니 죽기 전까지 이곳에서 웅크리고 죽은 목숨처럼 숨이나 쉬며 밥이나 축낼 것이다. 그래도 명희가 살아 있을 적엔 남들처럼 일도 하고 그럭저럭 부대끼며 살았다. 계약직이거나 어쨌거나 남의 돈 받아 가며 고기도 사먹고 술도 사먹고 몇명 남아있는 친구도 만났다. 그러다 명희가 병 들고 보니 그것조차 다 사치였다.
죽지만 말고 같이 오래 살자고 그러자고 매달렸지만 야속하게 먼저 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