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10월, 분분히 낙엽이 흩날리고 있다.
명문실업고등학교.
산 정상에 학교가 자리 잡은 터라, 오늘도 재옥은 숨이 턱에 닿도록 언덕을 오르고 있다.
간당간당. 등교시간에 맞추려면 숨도 크게 쉬지 말아야 할 터, 재옥은 다리 보다 얼굴이 앞서 나가는 이상한 모양새로 헉헉대고 있다. 뒷모습만 보고도 동창생들을 알아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학교 출신들은 튼튼한 다리와 알통을 가지고 있다. 좀 외모에 신경 쓰는 애들은 계단과 언덕길 중에서 절대 계단을 선택하지 않는다. 언제나 조심스럽게 살금살금 언덕을 오른다. 선생님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혼 여선생님들은 두꺼워진 다리가 콤플랙스가 되었다고 공공연히 말을 했다.
단, 예외가 있었는데 교장 선생님이었다.
군살 없이 탄탄한 몸매와 멋진 은발의 노신사.
학생들이 뒤늦게 헐레벌떡 언덕을 오르고 있으면 조용한 눈길로 산 중턱에서 쏘아 보셨다.
마치 게으른 족속들을 불쌍해 여기는 듯 쯧쯧- 혀를 차셨다.
소란스런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키 작은 쿨 가이. 아침 조례도 간단히 끝난다.
"별 일 없지? 안 온 사람 손 들어 봐라"
와글와글. 부글부글.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끓어오르기 시작이다.
더구나 여학생들만 가득 모인 교실이라니.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세상 별 일에 대해서. 이미 일어난 별 일들이 어떻게 다른 별 일이 되었는가에 대해서. 오늘 일어날 별 일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들을 말도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