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16. 민준

by 김정욱

아마 민준이 맡고 있는 회계 팀도 민준이 퇴사 하면 외주로 돌려질 것이다.

사내에서 직급을 올려주고 월급을 주는 것보다 외주로 돌리면 그만큼 효율적이고 경비절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사내 자금흐름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에 대한 거북함이 있으므로 미뤄지고 있을 뿐이다. 회계 팀의 수장 민준이 퇴직하는 날, 회사 내 회계 팀도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그동안 부자연스러운 자금의 흐름을 최대한 문제가 되지 않도록 묶고 쪼개고 새롭게 만드는 모종의 절차까지 민준의 업무에 더해져 있다.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업무에 진작 애착과 정성이 떨어진 것은 꽤 오래전이다. 이제 회계 팀은 충원도 없고 인원이 빠지면 빠지는 대로 남은 사람들이 업무를 짊어지고 가야한다.


월 초 상무와 면담을 했다. 웃음과 농담사이로 혹시 개인적인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다. 빨리 나가기를 바라는 건지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더 있으라는 건지 의중이 흐릿하다. 분명하게 따져 묻기도 피곤한 노릇. 불끈 사표를 상무얼굴에 던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인생이 헛되고 허무하단 생각이 든다. 젊은 날부터 바쳐온 시간들이 덧없이 느껴진다. 그러나 퇴직을 해도 내가 결정한다.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 온 댓가로 퇴직 날쯤은 내가 정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필요할 때 내가 정하겠다.

회사사정? 회사가 알아서 하라지. 오기와 배짱을 부려본다.

사랑이가 졸업반이다. 어학연수를 간다 어쩐다 하더니 잠잠하다. 민준은 사랑이가 대학을 다니면서 하고 싶은 일 뭐든지 다 해보길 바랬다. 자신의 대학시절을 돌아보면 반이 눈물이요 땀이었다. 항상 돈이 없었고 언제나 돈이 문제였다. 매번 지갑 속을 헤아리며 먹고 싶은 거 한 번 실컷 먹어본 적이 없다. 옷도 여름용 겨울용 두 가지. 가을 잠바를 산 것도 직장을 얻고 나서였다. 그래도 그때는 기죽지 않고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때처럼 살아낼 자신이 없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청춘, 상처가 많은 젊은 시절, 차라리 지금이 좋았다. 사랑은 민준이 주는 등록금은 받았지만 용돈은 제가 벌어 쓰는 눈치였다.

공부 하러 외국으로 가야겠다고 하면 천만원정도 목돈을 줄 생각이다. 하고 싶은 맘이 들었을 때 바로 나서야지 그 마음이 식어지면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를 할 것이다. 일단 맘이 가는 일은 무조건 해보라고 말해야겠다. 어짜피 후회는 나중에 하는 것이니 지금은 그냥 맘 가는대로 가보라고. 나중에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하지 말고 - -

“낼부터는 좀 늦을꺼예요”

“무슨 일?”

“영어공부 좀 해 보려구요”

“알았다. 몇 시에 들어 오려구?”

“11시 쯤요. 학교강의도 듣고 스터디도 하고 - - ”

“저녁은? 집에 와서 밥은 먹고 가니?”

“간단히 그냥 때우지요 뭐. 아저씨는 꼭 식사하세요”

“나도 간단히 때우지 뭐.”

“아저씨는 라면도 싫어하고 빵도 싫어하고 간단히 어떻게요?”

“글쎄 - - 생각해 봐야지”

“아이참. 아저씨가 문제네 - - ”

“뭐가 문제야?”

“신경이 쓰여서 내가 어떻게 공부를 해요?”

“내가 어린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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