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랑
“헤헤. 어린애면 데리고 다니면 되는데 - - ”
“나 신경 쓰지 말고 니 할 일이나 해라”
“지금도 안 늦었는데, 아저씨 연애해요”
“연애는 나 혼자 하냐?”
“어? 생각이 있으신 거네. 잘됐다. 좋은 사람 찾아 봐야지”
“그럼 난 기다리면 되는 거냐?”
“사실은요 - - 생각한 사람 있거든요. 시간 한번 만들어야 겠네”
“뭐라구? 아저씨 연애하면 너한테 눈길도 주지 않을 건데 그래도 괜찮은 거냐?”
“그래도 어쩔 수 없죠 뭐. 아저씨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할거예요”
“왜 갑자기 심청이가 된 거냐?”
“심청이요?”
“아닌가?”
“아저씨를 위해서 바닷물에 빠져야 되는 거예요?”
“안 빠져도 된다”
“아저씨. 우리 노력 해봐요. 각자 행복하면 보는 사람도 행복해질 꺼예요”
“그래 - - 그러자꾸나. 너도 니가 하고 싶은 일은 망설이지 말고 해라”
저녁식사 후 사랑이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쓸데없는 수다를 떨었다. 녀석은 날이 갈수록 민준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예전에는 하지 못하던 말도 낯도 안 붉히고 능청스럽게 잘 한다. 비위가 좋아진 건지 뻔뻔해진 건지 - - 알 수 없다. 살가와진 말과는 다르게 자꾸 거리감을 느껴지는 건 왜일까? 조금씩 이별연습이라도 하는 걸까? 알 수 없다.
‘아저씨, 저녁은?’ 몇 번 걸려오던 전화는 며칠 오더니 끊겼다. 민준은 거실에 걸려있는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12시가 다 돼간다. 이 아이는 이 시간에 어디서 무얼 할까? 누구랑 같이 있는 걸까? 걱정도 되면서 불안해진다. 야무지고 단단한 아이란 걸 알지만 저 혼자 지켜낼 수 없는 것이 있는 법, 민준은 자리를 떨치고 일어섰다. 아무래도 버스정류장까지 나가봐야겠다고 생각을 하다가 버스가 다니는 시간인지 어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집에서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보다 일단은 나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문을 나섰다. 비교적 넓은 골목은 가로등 불빛으로 환했다. 민준은 서둘러 큰길로 향해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했다.
“야. 너 그러지 말랬지. 너 왜 니 맘대로 나대는데 - - 왜에 - - ”
사랑의 목소리였다. 민준은 발길을 멈추고 주위를 살폈다. 골목 끝에서 사랑이가 누군가에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있었다. 가벼운 농담이 아닌 진짜 화난 목소리다.
'누구지? 누가 우리 사랑이를 화나게 한 거야? 어떤 나쁜 놈이?'
“야. 정 병진. 니가 그렇게 잘났냐? 니네 집 부자라며? 그래서, 니가 부자냐? 얼마나 부자냐고? 니가 사귀자면 무조건 오케이 해야 하냐? 이 모자란 놈아, 꿈 깨라. 꿈 깨애 - - ”
같이 있는 사람 목소리는 웅얼웅얼 들리지 않았다. 무슨 말로 계속 사랑이를 달래는 모양. 민준은 아는 척 나서기가 뭐해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을 열고 마루 끝에 앉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신경을 온통 빆으로 곤두세우고 있다. 사랑이를 불러서 데리고 들어와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도 어쩐지 자신이 방해꾼이 되는 것 같아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어느덧, 1시가 되자 다시 민준이 집을 나섰다.
사랑이를 데려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골목을 나가 보니 두 사람은 길 가에 퍼질러 앉아있다. 사랑은 목소리는 작아졌지만 무슨 말을 계속 하고 있고, 남자는 미안해 미안해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해 있었다.
"사랑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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