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남자친구
“사랑아 - - ”
사랑이가 듣지 못하자 민준은 급한 마음에 큰 소리로 사랑이를 불렀다.
“아. 안녕하세요? 정 병진입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죠. 죄송합니다”
“사랑아 - - ”
이 녀석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까부터 미안하다 미안하다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
“그만 가 보게”
“하아 - - 아저씨네”
녀석은 눈이 커지면서 사랑이와 민준을 번갈아 바라본다. 아빠가 아니라 아저씨라니? 그런 눈치다.
“하아 - - 아저씨. 세상에서 내가 젤 사랑하는 아저씨. 헤헤 - - ”
민준은 사랑이를 끌어 올려 한쪽 어깨를 보듬고 집으로 향했다.
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거야? 술이 약한 줄 뻔히 알면서 무슨 생각으로 - - 그것도 남자와. 괘씸한 생각에 불끈 화가 치밀었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그냥 소파에 고꾸라져 잠든 사랑이를 민준은 물끄러미 내려보았다. 이불을 덮어주며 아이를 방으로 옮겨야 하나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매 순간 시험에 들게 하다니 - - 역시 딸아이를 키우는 건 갈수록 어렵다.
마침 내일은 주말이다. 주말은 쉴테니. 내일 따끔하게 야단을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사랑이를 한 번도 야단 치거나 혼낸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시작인건가? 민준은 한 숨이 절로 났다. 빤히 쳐다보는 사랑의 눈길에 왠지 가볍게 흔들리고마는 민준의 다짐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아빠들은 딸과의 대화를 어떻게 하는거지?
주말이다. 어제 곤드레가 되어 늦게야 집에 온 사랑이는 아직 기척이 없다. 뭐라도 해장국을 끓여야 하는건가? 냉장고를 열어 보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재료가 없다. 라면 따위를 넣어두는 씽크대 장을 여니 사랑이가 사놓은 미역국, 해장국, 된장국, 갈비탕, 곰탕등 국거리 간편 식품들이 있었다. 해장국을 꺼내 냄비에 부으며 민준은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지가 먹으려고 사다 놓은 것이구나 싶어 슬며시 웃음이 났다. 과음을 하지 않는 민준은 해장국 먹을 일이 없을 테니 분명 제 것이구나 싶었다.
“아저씨, 죄송합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를 - - ”
“잘못 아셨네 - - 아저씨는 아량이 넓지 않으시네”
“앗, 내가 아는 아저씨가 아닌건가? 내가 아는 아저씨는 어디에 계신거지?”
“어이구, 녀석아 - - 엉뚱한 소리 그만하고 밥이나 먹자 - - ”
“헤헤 - - 제가 어제 살짝 갔죠?”
“무슨 일인데 그렇게 마신거야? 술도 약하면서 - - ”
“아. 글쎄 - - 그 녀석이 내가 아니라고, 그만두자고, 헤어지자고 했더니 기어코 이별주를 마셔야겠다며 우기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이니 내가 선심 좀 썼죠”
“이별주라고? 앞으로도 이별할 때마다 술타령 할꺼야?”
“노, 노. 아녜요. 역시 술은 나하고 안 맞아”
“꼭 그렇게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거냐? 서로 느낌으로 알고 저절로 멀어지는 거 아냐?”
“아. 글쎄 요즘 애들은 바보 멍청이라서 꼭 말을 해 줘야 한다니까요. 아님 계속 치근대고 맴돌아요. 귀찮기도 하고 - - ”
“남들 가슴에 눈물 나게 하면 안 좋은데 - - 니가 아직 거절당하는 입장이 돼보지 않아서 그렇치 가슴 아픈 일이야. 상처라구 상처 - - ”
“사실은요 - - 좀 겁나기도 해요. 나중에 -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거절하면 난 어쩔까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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