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민준
“좋아하지 마. 아저씨와 내 스케줄에 잠시 끼어 든 것 뿐이니까”
“네. 네. 감사합니다. 끼워주셔서 - - ”
“이집에는 청국장이 별미지. 자 자 가자구”
“아 - 아버님도 청국장 좋아하시네요. 저두요”
“사랑이도 좋아한다네”
“그런 말 안하던데 - - ”
“내가 왜 해야 하지?”
“알았어 - - 까칠하기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같은 층에 있는 커피숍에서 차 한 잔 하고, 사랑은 바쁘다며 먼저 나갔다. 녀석과 둘이 남게 되자 웬지 어색한 기운이 돌았다.
“저 아버님. 혹시 당구 좋아 하세요? 아님 볼링이라도?”
“자네는 바쁘지 않은건가?”
“저는 괜찮은데 - - 아버님이 심심하실 것 같애서”
“혹시 할 말이 없으면 우리도 나가 볼까?”
“저 아버님. 앞으로 종종 아버님과 만나면 안 될까요?”
“사랑이가 아니라 나를?”
“네. 저 실은 아버지가 안 계셔요. 아저씨를 뵈니 웬지 아버지 같은 생각도 들고. 큰 형님 같기도 하고 - - ”
민준은 말없이 녀석을 바라보았다. 눈이 맑은 녀석이다. 이런 녀석은 마음 속이는 그런 짓은 못 할 것이다. 사랑이는 어떨지 모르지만 민준은 녀석이 맘에 들었다. 지나치게 치근거리지도 그렇다고 쭈볏대지도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아는 경우 바른 녀석이다. 남자다운 배짱도 보이고 끈기는 좀 있으려나 - - 연애란 끈기가 생명인데, 민준은 자신이 연애 할 때가 떠올라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처음엔 지수의 무관심과 무시로 상처를 받았으나 결국은 투지가 더 불타오르지 않던가? 그때는 그녀와 결혼만 하면 영원히 행복할 줄 알았다. 결혼생활이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는 건 부모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은 다를 줄 알았다. 결혼 이후의 삶도 행과 불행을 시계추처럼 넘다든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남들은 다 행복한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인들도 알게 모르게 순간순간 행복하고 불행했다. 다만 모른 체하고 있을 뿐.
진심으로 녀석이 민준과 만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내 줄 것이다. 젊은이가 친구하고 싶다는데 마다할리가. 그런데 사랑에게 말을 해야하나?
12시가 다 돼서 사랑이가 돌아왔다. 기분은 괜찮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자꾸 사랑의 기분을 살피게 된다. 바람직하지 못하다. 모양 빠지는 노릇이다.
“아저씨. 낼 뭐 하세요?”
"왜?”
“낼 산에 가실래요?”
“산?”
“높은 산 아니구요. 그냥 나무 많이 있고 꽃도 많으면 돼요”
“왜 많은 남자친구는 어디 쓸라구 같이 가지 - - ”
“귀찮아요. 말이 많아서”
“뭐라구?”
“생각 좀 할려구 하면 계속 떠들고, 얘기 좀 하자하면 엉뚱한 소리나 늘어놓고. 애들이 어려요”
“아이구. 녀석. 저만 생각 있는 줄 알고 - - 알고 보면 남자들도 다 생각하고 산다니까”
“갑자기 나무냄새, 풀냄새, 꽃냄새 그런 게 맡고 싶어졌어요”
“그러자.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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