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23. 사랑

by 김정욱

다음날 아침. 민준은 일찍 눈이 떠졌다. 이상하게 점점 잠이 줄어드는 것 같다. 늦게 잠이 들고 일찍 눈이 떠지니, 잠이 부족해 오후 4시쯤 되면 졸음이 몰려온다. 졸고 있는 중늙은이라니 - - 자신이 늙고 있다고 생각했다. 냉장고도 열어 보고 씽크대 선반도 살피면서 산에 들고 갈만한 요깃거리가 있는지 살폈다.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유부초밥이 보인다. 얼른 쌀을 씻어 밥을 한다. 유부초밥을 만들 생각에 맘이 급해졌다.

동네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가면 그다지 높지 않은 천태산이 나온다. 민준의 마음이 복잡할 때 혼자 찾곤 했다. 사랑이와 둘이 걷고 있으니 이것이 행복이려니 - - 뿌듯한 맘이 들었다.

“아 - 정말 좋네요. 아저씨. 이렇게 좋은 델 혼자서만 오신 거예요?”

“니가 바쁘잖니”

“앞으로는 아저씨 - - 같이 와요. 정말 좋아요”

민준은 속으로 몇 번이나 올 수 있을까 생각했다. 생각대로 실천한다는 건 맘처럼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래. 그러자꾸나 - - ”

정상에 올라갔다가 내려 왔는데도 시간이 11시 밖에 안됐다. 하기야 해발 700미터 정도이니 - - 그나저나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해 온 점심은 어쩐다?

“아저씨. 배고파요”

“그래. 그럴 줄 알고 내가 맛있는 거 싸왔지. 어디 앉을만한 바위 있나 찾아 봐라”

“아저씨. 짱!”

짱이라니 - - 녀석. 말하는 거 보면 아직 어린애 같다. 몇 년 후면 시집간다고 설칠거면서 가끔은 어린애 같은 모습이 보인다. 역시 식탁에서 먹는 것보다 달다. 솜씨가 좋은 건가?

“아저씨. 할 말 있으시죠?”

“아니, 뭐 - - "

“에이. 딱 보니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 - 다 보이걸랑요”

“에 - - 그러니까”

“자꾸 망설이는 거 보니까 뭔가 곤란한 얘기인가 보네 - - 진짜”

병진이 얘기다. 니가 싫다하면 안 할께”

“그럴 줄 알았어. 좋아요. 그냥 듣기만 할꺼예요. 질문은 하지 마세요”

“그러마. 내가 병진이와 친구 하는 건 아는지 모르겠구나. 그건 그렇고. 첨엔 나도 녀석이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했는데 - - 그냥 말 그대로 친구하자는 거였다. 말하자면 인생선배 같은 거. 가끔 오래 산 사람 얘기 듣고 싶을 때가 있잖니. 아무 관계없는 사람한테. 대부분 그럴 기회가 없긴 하지만”

민준은 말을 멈추고 사랑이를 보았다. 사랑은 물을 마시다 내려놓고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생각에 잠긴 듯 했다.

“내가 보기엔 괜찮은 녀석으로 보이더란 말이지. 우리 사랑이 옆에 있어 주면 좋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니가 녀석을 멀리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음 - - 뭐랄까 아저씨 생각으론 니가 녀석을 다시 한 번 봐주기 바란다고나 할까. 왜 있잖냐 - - 단숨에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보면 볼수록 좋아지는 사람도 있단다. 어쩌면 오래 보면 좋아지는 사람이 더 진국일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니까 녀석이 첨 볼 때 보단 괜찮더란 말이지. 솔찍하고 배짱도 좀 있고 순수한 면도 있고 소신도 있고 말이야. 내가 너무 좋은 점만 말했나 - -


역시 반응이 없다.

“그래그래. 좀 진중하지 못한 점도 있지. 성격이 급하다 보니 맘보다 몸이 먼저 나갈 때도 있고. 그래도 아저씨가 그 나이 때는 훨씬 더 못했어 - - 그래 맞아. 니 생각이 젤 중요하지 뭐. 내가 지금 뭔 말을 하고 있는 거냐?“

민준은 혼자 얘기하다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었다.


매주 화/목/토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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