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아, 사랑아

24. 병진

by 김정욱

역시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옛날 지수한테 수없이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그때부터 누군가 설득하는 일을 포기했는데 이제 와서 사랑에게 무슨 짓이람 - -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는 일이다. 아이 일은 아이에게 맡길 일이다. 제가 손을 뻗어 오면 잡아주면 될 것을 이 무슨 오지랖인가. 민준은 헛웃음을 지었다. 병진이도 사랑이와 진전이 없다면 제 스스로 멀어질 것이다. 민준이 염려할 일은 아닌 것이다.

“저 - - 가 봐야 하는데”

할 말이 다 끝났냐는 말이다.

“간다구? 음. 그래 집에 가자꾸나”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녀석이 사랑에게 책잡힐 짓을 한 거야 내가 모르는. 지나고 보면 여자들은 아주 사소한 일로 큰 결정을 하기도 하지 않던가? 결국 넘어지는 건 태산이 아니라 작은 돌부리인 것을. 이제부터 녀석과 사랑 일에 무심해지기로 했다. 될 일은 될 것이다.

“아저씨. 저 오늘 늦어요”

늦는다고 하는 걸 보면 12시 퇴근이다. 좋을 때다. 나이가 먹고 보니 저녁 시간이 길었다. 티브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 민준은 운동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집 안 정리를 했다. 이리저리 가구를 옮기기도 하고 자잘한 소품들을 자리 바꾸기도 한다. 거실 일인용 소파를 앞쪽에서 뒤쪽으로 옮겼는데 사랑이가 알아주지 않아서 서운한 적도 있다. 살림하는 재미를 하나 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전화벨이 울렸다. 병진이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별 일 없으시죠?”

“그래”

“이번 주말에 뭐 하세요? 일정 없으시면 저랑 라이딩 가실래요? 자전거는 빌리면 돼요”

“둘이 말이냐?”

“네. 한강 위 쪽으로 가면 좋아요. 한 번 가봤는데 좋았어요”

“그래. 그러자꾸나”

전철역 근처에 자전거 가게 있어요. 거기서 봬요. 한 9시쯤”

“그래. 알았다”

불러내서 어디라도 가자는 친구가 있으니 좋았다. 이 녀석 맘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모른 척 하기로 했다.

화창한 주말이다. 사랑은 늦잠이라도 자는지 기척이 없다. 식탁위에 메모를 남기고 집을 나섰다.

딸은 커서 엄마랑 친구가 된다던데 아들도 자라면 아빠랑 친구가 되는 건가? 아마도 아주 운 좋은 아빠들만 친구가 될 것이다. 머리가 굵어질수록 아들은 점점 아빠와 멀어진다. 커가면서 아빠의 단점 약한 점이 눈에 들어오고 실망하고 거부감이 들기 마련이다.

민준도 그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혼자 계시지만 꿈에라도 모시고 산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늙고 힘 빠진 모습은 더 견딜 수 없어진다. 못된 자식이라 스스로 생각이 들면서도 어쩔 수 없다. 마음이 가지 않으면 저절로 되지 않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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