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병준
“아 - - 정말 좋아요. 하 - ”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땀으로 번들거린다.
“아저씨. 정말 체력 좋으세요. 저도 많이 힘든데 - - ”
“옛날에 차 없을 때 차비 아끼느라 늘 타고 다녔거든. 그때 실력이지. 이쪽은 첨인데 좋군. 정말 고마우이 - "
“에이. 아저씨는 - - 제가 더 감사하죠”
“어디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요기나 하자”
“마을쪽으로 들어가면 산채밥집이 있어요. 가시죠”
가정집에 작은 문패만 있다. 산채나물 정식. 오랜만에 군침이 돌았다.
제법 시장기가 돌아 두 사람은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뒷마당으로 나서니 작은 채마 밭이랑 들꽃들이 오밀조밀 피어있다. 이야기책에나 나올법한 고즈넉한 풍경이다. 식당에서 주는 우엉차 한잔씩 들고 뒷마당에 있는 평상에 앉았다.
“아저씨.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요. 사랑이랑도 상관 없구요”
“니가 그렇게 얘기하니 웬지 사랑이랑 상관있다고 들리는구나”
“에이. 아저씨 - - 그냥 아는 형님이라고 생각할께요. 아저씨도 아는 동생쯤으로 여겨주세요”
“동생이라고? 내가 젊어진 기분이네. 허허”
“당분간 공부나 하려구요. 교환학생 신청했어요. 되면 좋은데 - - 돈이 모이면 배낭여행도 하고. 아무래도 졸업하면 취직해야 되고 그러면 바빠지겠죠. 내가 좀 나은 사람이 되면 그때는 혹시 사랑이가 날 봐 줄지도 모르죠. 희망사항이지만 - - ”
민준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그때쯤이면 니 맘이 변했을지도 모르고 - - ’
집에 돌아오니 사랑은 나가고 없다. 노곤해진 몸이 오랜만에 기분 좋았다.
적당한 피곤이 민준을 너그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면 하나를 끓여 먹고 맥주 한 캔 들고 서재로 올라왔다.
‘오늘은 행복한 날’ 살아 보니 행복이란 이삭줍기 같은 거였다. 한 알 한 알 소중하게 주워 담을 일이다.
카톡- 민준에게 오는 카톡이란 회사 공지 정도였다. 열어 보니 병진이다.
“아저씨. 오늘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혼자라면 아마 못 갔을거예요. 제 맘속에 여러 생각들이 복잡했는데 덕분에 많이 정리 됐어요. 사랑이가 그러더라구요. 제 맘속에 다른 사람이 있다구요. 누구냐고 물어 보진 못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 사람 보다 나은 사람이라면 절 만나겠죠? 그러면서 제가 좋은 사람이라 했어요. 좋은 사람이랑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다르다는 말도 했어요. 뭐가 이렇게 복잡하죠? 여자들은 참 모를 존재예요. 여자들의 말도 어렵고 여자들의 맘은 더 어려워요. 내가 그 사람 맘을 헤아리지 못하는 걸 보면 그 사람 맘이 나와 다르다는 거잖아요? 무턱대고 들이대기만 했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아님 말지 뭐 - - 그런 생각도 했지만 웬지 미련이 남네요. 끝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까요? 모르겠어요. 일단 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스스로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어요. 마침표가 아닌 쉼표요. 사실은 오늘 술까지 마시고 싶었는데. 아저씨한테 너무 폐가 되는 거 같애서 - - 헤헤. 아저씨한테 이 말 저 말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안녕히 계세요”
민준은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다. 예쁜 청춘이다.
그나저나 사랑이가 맘속에 두고 있다는 사람은 누굴까? 공연한 근심이 생긴다. 영리한 아이니 제 앞가림은 잘 할 것이다. 알지도 못하면서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꾸 생각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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