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시간

by 김정욱

아들에게 책을 받았다.

'세계구축행위 - 환경세계와 ANT'

벌써 제목만으로도 어렵다.

뭔가 범접(?)하기 어려운 세계. 음 - 벌써부터 어려워진다.

도서관에서 만났으면 절대 집어들지 않았을 - - 헌데 내 앞에 와 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아들의 시간이 들어있다.

피, 땀, 눈물. 아들의 박사논문이다.

아들은 철학을 전공. 철학공부를 한지 십 수년. 지금은 대학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다. 아직 교수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학생들에겐 교수님으로 불린다. 철학이 좋아 철학의 세계로 들어서서 오늘까지 - -


내게 철학은 미리부터 뭔가 심오하고 어렵고 복잡하고 - - 도돌이표 같은 '그래서 뭐?' '어쩌라고?' '왜?' '뭐가 문젠데?' 끊임없이 올라오는 의문의 세계. '이건 이러이러 하니 이렇고, 저건 저러저러 하니 저렇고, 이건 저러이러 하니 저렇게 이렇게 되는 거고, 저건 이러저러 하니 이렇게 저렇게 되는것이다.'는 논박의 세계.

전들 흔들리던 시간이 없었으랴? 도망치고 싶고 모든 걸 내던지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겠지.

어쨌든 그 지난한 시간을 돌고돌아 드디어 이 책 한 권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학문에 마침표가 어디 있겠느냐만 난 너의 대장정에 힘 찬 박수를 보낸다.


'장하다. 대단하다. 넌 해 냈구나 - - 자랑스럽다 - - 누가 뭐래도 넌 보람찬 일을 해낸거야'


살면서 죽을만큼 애를 써도 결과를 내지 못하는 일도 있는 법. 너도 이미 겪었으니 알겠지만 호사가들이 말하길 과정을 즐기라고 - - 젠장 과정을 즐기기가 쉽냐고?


언젠가 니가 좀 봐달라고 원고를 보낸 적이 있었지.

아마 석사논문이었을껄. '스피노자 철학의 신 중심적 해석에 대한 비판'

평소 활자중독처럼 장르 불문 책을 읽어대고, 끄적끄적대길 좋아하는 나에게 실낱같은 기대감을 갖었던 모양이나, 난 그 원고에서 한 글자도 바꾸지 못했다. 애초 다른 영역, 다른 세계인 것이다. 써 있는 말이 한글이고, 영어로 써 있어도 친절하게 주석을 달아 놓았으니 못 읽을리 없으나, 도대체 빡빡한 이론의 세계는 감히 발을 디딜 수 없었다. 대신, 넌 지금 이런 세계에 살고 있단 말이지 - - 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세계와 너무 동떨어져 있는 건 아닌가 - - 아니면 시험을 위한 시험공부, 학문을 위한 학문 연구인건가? 그런 생각에 빠졌었다.


어쨌든 며칠 전, 넌 의기양양 자랑스런 표정으로 이 책을 나한테 내밀었을때 난 기뻤다.


"오! 드디어 해냈구나. 대단한걸 - - 그래. 꼼꼼히 한 줄 한 줄 잘 읽어볼께. 이해하면서 읽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꼭 그렇게 해 볼께"


그렇게 말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난 내가 책을 좋아해서 너희가 어렸을때부터 서점으로, 도서관으로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 다행히 넌 책을 좋아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에서 그 어렵다는 '철학'을 전공할 줄은 몰랐다. 비실용 학문으로 꼽히는 철학, 이즈음 대학마다 폐강이 되고 통합이 되고 있는 그 철학에 올인. 한 곳을 보며 달려갈줄은 난 몰랐다. 속 마음으로는 뭔가 실용적인 학문을 부전공이라도 하는게 어떨까 생각을 했지만 한 번도 말 하지 않았다. 다른 생각이 들면 스스로 결정하겠지 하고 널 믿었어.

그런데 웬걸 '철학'이 그렇게 재밌는지 석사를 하고도 또 공부공부. 와우 - 보통사람은 엄두도 못낼 일을 끝까지 달려가다니.


하긴 니가 공부만 한 건 아니었다.

돈을 벌어가며 공부. 일 공부 일 공부 일 공부 - - 중간에 잠시 멈춘적은 있었지만 딴 곳으로 눈 돌리진 않았다. 음 - 대단한 일편단심.

그대신 생활비 버는 일로서 정말 다양한 일을 했다.

토목설계사무소, 행사장 준비위원, ㅇ ㅇ 대회 진행요원, 철도레일 보수, 버스회사, 자동차 부품공장, 공사현장, 문화유적 발굴회사, 이사짐 센타, 대형마트 푸드코트 등등. 내가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일을 했다. 어느 날, 내가 물었지. 왜 그렇게 매 번 다른 일을 하냐고? 그냥 가성비 좋은 일을 선택해서 하면 되는데 - - 그랬더니 아들이 말했다.


"최대한 많이 다른 일을 하고 싶어. 돈도 중요하지만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하고 싶어. 막상 힘든 일도 가끔은 좋은 순간들이 있어. 진심 좋아 하는일을 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어렵게 살지만 따뜻한 인생선배들도 만나고, 팀으로 움직이는 일이면 서로 맘 맞추는 법을 배울 수도 있고 - - 새벽에 버스회사 다닐때 매일 동 트는 걸 봤는데 - - 그러면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 얼마나 장엄한지 스스로 바르게 살아야지 - - 그런 다짐을 하게 되 - - 야간에 일하는 철도회사는 모든게 당연하게 돌아가는 일상생활이 실은 누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와 땀을 흘렸다는 걸 맘에 새기게 되고 - - "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저마다 사는 인생도 매우 달랐다고. 이상하게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느끼는 행복지수는 각 각 달랐다고, 또 와 줄수 있냐고, 같이 일 하자고 잡는 사장님도 많았다고, 찐 인생공부를 하는 중이라 했다.

헐 - -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생각이 깊고도 넓구나. 이제부터 니 인생에 장군 멍군은 하지 않으마. 알고보니 넌 잘 살고 있는거였어.


가끔 12시쯤 니가 전화할때가 있었지.


"엄마. 놀아?"

"아니. 영화 봐. 넌?"

"나야 - - 뭐 좀 쓰지 - - "

"빨리 자 - - 내일 해 - - "

"2시까지만 할꺼야 - - "


넌 분명 컴퓨터를 눈 빠지게 들여다 보다 순간 졸음이 온거야. 한참 이 말 저 말 쓸데없는 말을 늘어 놓다가 잠이 깨면 전화를 끊었지.


아들아!

세상에 철학을 전공한 사람은 적고, 그 적은 사람중에 석사를 한 사람은 더 적을테고, 그 중에 지난한 박사과정을 끝내고 학위까지 받는 사람은 더 더 적겠지.

일편단심. 한 마음으로 오랜시간 공부해온 너, 정말 멋지다. 최고최고!!


난 니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던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잘 헤쳐나갈거라 믿는다.

니 책을 받아들고 보니 만감이 교차해 두서없이 이 말 저 말 적어보았다.


축하, 축하한다.

사랑한다. 아들!!


2026.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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