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 공주, 우리 공주
넌, 태어났을 때부터 별 같이 예뻤단다.
아직도 엄마 아빠는 널 유진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릴 적, 니가 꼬맹일 때 물었지.
"왜 엄마, 아빠는 날 공주라고 해?"
"세상에서 젤 예쁘고 소중하니까- -"
엄마 아빠는 합창을 했어. 기억나니?
엄마는 간 이식을 안 하면 위험하다는 의사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줄줄.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서둘러 남은 식구들이 간 검사를 받았는데, 나온 결과를 보고 또 한 번 절망을 했어. 약을 먹는 한 서방이랑 니 아빠는 안 되고, 엄마도 간 수치가 나빠서 안 되고, 니 오라비도 건강이 썩 좋지를 못하더구나. 대기자 명단에 올리긴 했지만 촌각을 다투는 이 마당에, 어느 세월에 기증자가 나타나겠느냐? 나타난다 한 들 대기자가 이미 있는데. 의사 말이 젊은 사람이면 먼저 할 수도 있다지만 그저 먼 얘기로만 들리더구나.
공주야. 우리 공주야.
이틀이 지나도 혼수상태에서 니가 눈을 뜨지 못하자 의사가 말하길, 이제는 간이 와도 수술을 하지 못한다고. 다른 기능들이 다 떨어져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하라고. 들을 수는 있다고.
간성혼수가 얼마나 무서운 줄 이제 알겠다.
아기들만 열이 나면 큰 일인줄 알았는데 어른도 열이 나면 무서운 거였어. 초기 대응이 미숙했던 거야. 감기쯤으로 여겼는데 세상에 이럴수가!
보통 열이 나고 몸이 으슬으슬 춥고 아프면 누구라도 감기려니 하지 않더냐. 너도 그랬을테고.
그날 밤, 한 서방이 전화했을 때. 그때 말이야. 다음 날이라도 큰 병원으로 널 데려갔어야 했는데. 엄마가, 엄마가 무심히 그냥 넘기고 말았구나. 엄마 탓인 거 같아 얼마나 가슴을 쳤던지,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지나간 시간을 돌릴 수 없다는 게 너무나 한탄스럽구나.
미련천치, 바보 멍텅구리. 할 수만 있다면 엄마 생명을 끊어 너에게 주고 싶었다.
앞날이 창창한 우리 공주. 이제 겨우 서른한살.
이제 막 결혼을 해서, 니가 그렇게 좋아하는 한 서방이랑 앞으로 행복한 시간을 누리는 일만 남았는데. 어찌 이런 일이. 그동안 풍족하게는 살지 못했지만 큰 고생 없이 살아 온 내가 한꺼번에 큰 벌을 받은 느낌이 들었다. 이때까지 살면서 남들한테 눈물 나게 한 적 없었는데 갑자기 이게 뭔 일인가 싶기도 하고, 혹시라도 내가 알지 못했던 잘못으로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곡하게 빌고 싶었다.
우리 딸, 우리 공주 좀 살려 달라고. 앞으로는 정말 정말 착하게 살겠다고.
삼일을 눈물로 지새우니 탈진이 되어 널브러졌다.
니 아빠도 그렇고. 니 오래비도. 한 서방도. 엄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