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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by 김정욱

12-13. 혼수상태로,

주렁주렁 줄을 매달고 있는 널 보니 결정을 해야 했다.

의사 말로는 회복이 어렵단다. 이미 모든 신체기능이 다 떨어졌고 간신히 심장만 뛰고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이제 널 보내기로 했다.


너도 얼마나 힘들겠느냐?


줄에 매달린 니 생명, 버티고 있는 너도 많이 힘들었지?

너에게 연결했던 생명유지 장치를 떼어내고 니 심장이 멈추었을 때, 넌 어땠을까?

"아- -이젠 쉬겠네. 편해졌어- - -"


그랬지? 그렇겠지?

공주야. 우리 이쁜 공주. 꼭 그랬길 바란다. 엄마 아빠가 너의 손을 놓기는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공주야. 안심해. 널 떠나보낸 건 아니란다. 넌 영원히 엄마 아빠 가슴 속에 공주님으로 살고 있어.


어느 날. 니가 이쁜 딸로 우리에게 와 준 것처럼 이렇게 느닷없이 떠나가다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것이 꿈인가, 꿈이려니 했다. 아직도 엄마 짱! 엄지 척을 해 보이던 꼬맹이 니가 눈에 선한데 어떻게 널 잊을 수 있단 말이냐. 널 생각만 해도 눈물이 평평- - -

공주야. 우리 이쁜 공주.

니가 만 서른살에서 두 달이 모자르는구나. 결혼을 한 지 넉 달. 한 서방은 울면서 말하더구나. 1550일예요. 너와 한 서방이 같이 지내온 날이 1550일.


공주야.

니가 우리 곁에 머문 시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그동안 넌, 정말 힘껏 잘 살았다.

엄마 아빠와 살적에는 착한 달, 이쁜 딸로 자라, 공부도 잘 했고, 직장도 잘 다니고, 아이들에게는 좋은 선생님으로. 직장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으로 인정도 받고, 널 좋아하는 친구들은 또 얼마나 많으냐? 인자, 민경이. 연희. 슬기. 또 다정이랑 진희는 초등학교때부터 너의 단짝 친구들이 아니더냐?

사랑하는 내 딸, 공주야.

"친구들 앞에서는 공주라고 하지 마요. 애들이 놀린다구요"

어린 니 목소리가 들린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엄마는 내가 그렇게 좋아? 공주 공주하게. 히히히--"

그러던 니가. 오래비보다 눈치 빠르고 철이 일찍 든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타는 게 아빠를 돕는 거라며 참 열심히 공부했지. 아이를 좋아하던 니가 동네 꼬마들도 많이 예뻐했단다. 할머니와 둘이 사는 보영이도 툭 하면 데리고 와서 밥 먹이고 씻기고 머리 묶어주고, 동생처럼 돌봤지.


좀 까칠하기는 하지만 속마음은 더없이 보드라운 내 딸, 공주, 꿈에도 오지 않는 널 많이 그리워한단다. 지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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