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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by 김정욱

13-13. 그렇게 맘을 쓰던 한 서방을 어찌 두고 떠났을까?


"한 서방은 내가 없으면 안 돼"

니가 입버릇처럼 그러더니. 그 한 서방은 니가 떠난 뒤로 아주 반쪽이 됐어. 하기야 니가 없으니 반쪽이 된 건 맞지만. 얼굴이 수척한 게 말이 아니더구나.

내가 상심을 많이 하니 걱정이 되는지 자주 들른단다. 니 아빠도 내가 우울증에 걸릴까봐 그러는지 자기 힘 든 거는 제쳐두고 온통 엄마한테만 신경을 쓰고 있고.

하지만 엄마가 누구냐? 니가 말하는 여장부 아니냐? 쌈도 잘하는. 따질 일 있으면 따져야 하고, 싸울 일 있으면 싸워야 한다는 게 엄마 소신이지. 무른 아빠와 살다 보니 어쩌다 너한테까지 '울 엄마는 여장부야!' 소리를 들었지만.


아직도 맘이 아프고 쓰려서 문 밖에 나서질 못하겠다. 어쩐지 햇살이 부끄럽고, 너와 비슷한 젊은 주부들 보면 니 생각이 나 눈물이 평펑 쏟아질 것 같고, 다리가 풀려 걷지를 못할 거 같으니, 당분간 집 안에만, 그늘에만 있으련다. 우리 공주, 맘껏 그리워하고, 슬퍼하고,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실컷 흘릴꺼야.

엄마 맘 알겠지? 우리 공주.


악몽 같은 4월이 가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고, 작년 한 해가 저물었다.

아직도 너의 빈자리를 실감하지 못하고, 가끔 얘가 왜 통 소식이 없지? 한단다.

세상에 너만 없고 하늘도 바람도 꽃들도 여전한데, 아무렇지 않게 평화롭기만 한데, 우리 공주만 볼 수 없다니.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잠깐 어떤 일로 웃다가도 웃음을 뚝 그치기도 한단다. 내가 뭐 좋은 일이 있다고? 우리 공주도 없는데, 그러면서.


공주야. 지난 해 4월, 널 보내고 엄마 아빠는 절에 가끔 간단다. 우리 집에서 조금 더 가면 있는 작은 절. 그전에도 너랑 간적이 있었잖아. 쑥 캐러 갔다가 우연히 발견한 조그만 암자 말이야. 특별한 종교가 없던 우리 집인데, 너를 보내고는 어디든, 누구에게든 머리를 숙이고 싶어지더구나.

부처님, 우리 공주 편하게 지켜주세요. 하느님, 우리 공주 부탁합니다. 부모 맘이겠지.

숫기 없던 한 서방도 자주 집에 들른단다.

기별 없이 과일을 사들고 나타나 같이 저녁을 먹기도 하고, 니 아빠와 장기도 두고. 이만하면 우리 잘 살고 있는 거지? 니 대신 내가 잔소리를 하기는 하지만, 다 사랑이려니 한단다.


공주, 우리 공주야. 이쁜 내 딸. 엄마 아빠가 많이 많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 - - - - 끝.



'코로나' 시국이었다. 온세상이 어수선, 어지러웠다.

12월 30일, 결혼식에 갔는데, 신랑 신부가 웃는 모습이 어찌나 닮았는지, 정말 인연이구나 싶었다.

함박꽃처럼 웃던 그 아이, 하이톤 그 목소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희 잘 살께요- - - 잘 살겠습니다- - -"

그랬는데 - - -

- - - --

- - -- -

친구 말 "만나면 언젠가는 헤어지잖아. 이제는 우리 공주, 보내주려고. 엄마 딸로 와줘서 고마웠다고, 그동안 많이 많이 행복했고 많이 많이 사랑한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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