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 지방에 있는,
사촌 언니집 근처로 온 연숙은 언니네 식당에서 찬물에 손을 담궜다. 사촌언니도 몇 년 전 아픈 형부를 떠나보내고 혼자 밥집을 하는데, 연숙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연숙은 친정 쪽으로는 거의 왕래가 없는 오빠만 있을 뿐 고아나 다름이 없었다.
흔적 없이 멀리 떠나온 그녀는 모든 기억을, 모든 아픔을 깊이 깊이 마음속에 묻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공부를 잘했다.
연숙은 식당으로, 채소가게로, 품앗이로 미친듯이 일했다. 이제부터 앞만 보고 살리라 다짐했다. 착한 아이들은 구김 없이 컸다. 엄마와 아이들은 각자 바쁘게 돌아갔다. 차분히 앉아 얘기 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연숙은 남루한 일상에 찌들며 돈벌이에 허덕였고, 매일 조금씩 아팠다.
공부 잘하는 수현이는 고등학생이 되자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가겠다고 했다. 가고 싶다가 아니라 가야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연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쿵 - 떨어졌다.
더 이상, 자신은 아이들의 의논상대가 되지 못하는 걸 알았다. 가슴 한켠이 싸하니 아려왔다. 어지럽기도 했다. 이제 그녀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했다. 수현이가 재수를 하게 되자 아예 서울로 거취를 옮겼다. 오래 된 변두리 동네에서 객지 생활을 시작했다. 1년 후, 수진이도 대학을 가겠다고 서울로 떠났다.
연숙에게 남은 건 소소한 아이들 물건 몇 개와 매달 부쳐야 하는 몫돈이다.
그즈음 사촌언니는 식당을 접고 건설 공사현장을 따라 다니며 밥집을 하게 되었다.
일명 함바식당이었는데 돈벌이는 괜찮았다. 하지만 밥집인지, 술집인지, 일꾼들이 하루 세끼를 대먹으며, 해가 뜨건 해가 지건 상관없이, 무시로 남자들이 드나들었다.
연숙은 그 상황이 탐탁치 않았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