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

by 김정욱

2-14. 정이는 드디어,


소주잔을 털고 벽에 기대어 저려오는 다리를 폈다.

새삼 둘러보니 세간이랄 것도 없이 방이 휑했다.

언제든 신발만 꿰면 떠날 수 있는 모양새. 옷가방. 옷 박스. 이불, 약간의 잡동사니.

방 한 칸에 부엌 한 칸이었지만 부엌살림도 없었다. 냄비 몇 개와 그릇. 작은 냉장고 뿐이었다. 정이는 문득 이렇게 간소한 살림으로도 생활이 가능 하다는 게 새로웠다. 자신의 집을 떠올리며, 나는 구석구석 무엇이 그리 많을까? 다 쓸모는 있는걸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오늘이 우리 수현 아버지 기일이야"

'수현이? 수현이는 누구?'

"전 남편. 수현이. 수진이 아빠야. 아주 잘 생겼어 우리 애들. 잘 컸어. 공부도 많이 해서 둘 다 박사야"


'전 남편 애들 얘긴가??'


정이는 말없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내 죄 값이지. 우리 순아는. 사랑을. . . 사랑을 또 했으니 ... ."


순아 엄마는 아련한 눈빛이 되어 회상에 빠져 들었다.


수현이, 수진이 아빠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알뜰하고 부지런한 수현 엄마, 연숙은 살림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웃기도 잘하던 사모님이었다. 넘치던 행복은 큰 아들이 10살, 딸애가 8살에 막을 내렸다.

퇴근 길, 집으로 돌아오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 그야말로 감쪽같이 사라졌다.

연숙은 시댁 식구들 서슬에 통곡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두 남매를 가슴에 안고 뜨거운 울음을 삼켰다.

꿈이었다. 꿈이었으면. 일장춘몽. 내게도 남편이,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기는 한 걸까?


이 아이들은 어쩌라고? 물며 빨며 이뻐 하던 애들 아빠는? 다정하던 그 사람은?

순진했던 그녀는 '사망 보상금' 따위는 보지도 못한 채, 험한 세상에 내동댕이 쳐졌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