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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by 김정욱

10-14. 이른 장마였다.


지겨운 비였지만 연숙은 좋았다. 비 오는 날을 어릴적부터 좋아했지만 이웃집 아줌마한테 퉁을 들은 뒤론 드러내질 못했다.

"주룩주룩- - - 처량 맞은 인생 되려구 비를 좋아 하니? 너는"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한참 후 어른이 된 뒤에야 대꾸할 말이 떠올랐다.

비 오는 시간, 잠시동안 마음의 평화, 몸의 휴식, 예감처럼 그가 왔다.


"술 한 병 주시오"


반병 마신 소주로 그는 온통 귀까지 빨개졌다.

술을 전혀 못한다던 그였다.


"안돼요- - 그만 하세요"

"연숙씨. 혹시 나 좋아요?"

연숙은 빤히 그를, 그의 눈을 들여다 보았다.


"나 같은 놈 좋아하지 마세요. 자식을 죽인 놈, 마누라 병들게 한 놈, 몹쓸 놈예요"

"아녜요. 진 목수님. 진 목수님은 좋은 사람예요"

"그럼, 날 좋아하는 거 맞군요"


순간 연숙은 눈물이 주룩 흘렀다.


"내려놔요. 그만. 그만, 자신을 그만 괴롭히세요. 그건 사고. 사고였어요. 사고라구욧"


연숙은 눈물로 뒤범벅 된 얼굴로 소리쳤다.


"난, 난 어땠는데요. 괴로울 시간도, 슬플 시간도 없었다구요.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아세요? 아시냐구요? 일벌레처럼 살았다구요. 근데 자식들은 다 컸다구 곁에도 오지 말라네요. 모두들 바쁘대요. 네 - - 항상 바쁘죠. 우리 애들은 박사, 교수 될거래요. 그럼 난 어디 숨죠? 잘난 우리 애들한테 난 부끄러운 존재인가요? 난, 뭔데요? 난 뭐냐구요?"


연숙은 폭발하고 있었다.

진 목수는 몸부림치는 연숙을 끌어안고 달래고 있었다.

그 역시 눈물범벅. 두 사람은 오랜만에, 진실로 오랜만에 시원한 통곡을 했다.

진정으로 가슴을 활짝 열고 마른 숨이 꺽꺽 넘어 가도록 맘 껏 울어제꼈다.


그렇게 그의 사랑이 그녀의 맘속으로 쑥 -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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