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순아를 낳았다.
연숙에게 인생의 봄날이 다시 찾아왔다. 눈물 많은 인생, 갈 곳 없던 마음, 모두 내려 놓았다.
두 살 된 순아를 업고 시내 작은 장터에 국밥집을 열었다. 그러는 동안 연숙은 수현과 수진이를 마음에서 놓았다.
'잘 살거라. 내 새끼들. 이젠 너희를 찾지 않으마. 이제 이 엄마를 맘껏 부끄러워 하렴'
순아는 다섯 살이 되도록 눈을 맞추지 못 했고, 말을 잘 하지 못했다.
연숙은 가슴 속 깊은 곳에 뜨거운 소명감을 깨달았다.
'아 - -아직 내 인생에 숙제는 끝나지 않았구나- -'
진 목수는 방황했다.
"이 아이는 내가 키울꺼예요. 그러니 당신은 가고 싶은데로 가세요"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순아만 들쳐 업고, 가방 하나만 챙긴 채 그 도시를 떠났다.
'그래. 이 아이가 내가 살아갈 목적이야. 열심히 살아 갈 이유. 자신 있어!'
연숙은 자신만을 의지하는 작은 생명을 끝까지 지켜 주기로 마음먹었다. 큰 도시로 흘러 들기에는 아직은 겁 많은 그녀였다. 작고 조용한 동네. 그러나 아이가 크기에 부족하지 않은 도시를 찾아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항상 아이를 끼고 있어야 하는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나이를 거스른 채 그녀는 생에 대한 의지가 불타올랐다.
순아가 10살. 생일케익에 초를 꼽던 연숙은 문득 이 아이에게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그녀는 진 목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이라도 좋으니 아이 아빠만 좀 해 주세요"
그 밤에 달려 온 진 목수는 눈이 붉었다.
못 본 사이에 폭 늙어 버린 그를 보며 연숙은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이 사람을 힘들게 하지 말자'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오구.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가세요. 그리구 순아를 봐서라도 오래오래 살아야 되요. 그거면 돼요. 제발 내 앞에서 죽지만 말아요"
연숙은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았다.
절대로 울지 않으리라, 독하게 살리라 했던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