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4. 얼마 후, 수진이 혼자 찾아왔다.
수진은 결혼하여 딸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동안 오빠랑 엄마를 많이 찾았노라고.
사촌언니를 만났는데, 다시는 엄마를 찾지 말라고, 엄마는 재혼을 했다고.
그러나 저는 마음을 끊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가 다시 혼자 된 걸 았았다고. 힘들게 된 걸 알았다고.
연숙은 쓰게 웃었다.
'내가 너희에게 시시콜콜 묻지 않듯 너희도 내게 묻지 말아라. 어떻게 살았냐고? 무슨 맘으로 살았냐고? 그 서러운 시간들을 어떻게 견뎠냐고? 미친년 마냥 널뛰며 이렇게 저렇게 살았는지- - -제발 묻지 말아라'
이상하게도 연숙은 수진의 말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도 입술을 깨물며 참아야 했던 내 새끼인데 이렇게 덤덤할 수가 있다니- - -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너무 팍팍하게 살다보니 감정이 건조해져버린 모양이라 생각했다.
이제는 무엇을 보아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크게 놀라거나 노여워하거나, 두렵거나 슬프지 않을 것 같았다.
"순아 - -"
연숙은 시계를 올려 보며 수진의 얘기를 끊고 일어섰다.
순아가 학교 마칠 시간이 된 것이다.
결국 수진은 눈물을 떨구었다.
'우지마라. 수진아. 너와 네 오래비는 나 없어도 잘 살지만 우리 순아는 내가 없으면 암 껏도 못 한단다'
해가 갈수록, 나이를 더 할수록 진 목수는 몸 사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 과하게 했다.
자신이 벌이가 있을 때, 순아랑 자네랑 평생 먹을 것을 장만해야 한다고. 어머님 요양원비랑 딸아이 시집 갈 밑천까지 해야 한다고, 죽기 전에 그래야 한다고.
눈물 나는 인생이었다.
밀알이다. 자기 몸을 묻어서 밀을 키워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