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혹시,
그거 알아요?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메고 들고, 이 동네 저 동네 끝도 없이 걸어다니며 장사 하는 거- - -묵직한 가방에 어깨가 기울고 등이 휘고 무릎이 나가도록- - 그렇게 살며- - -날 키웠지- - -울 엄마가- -- -
그것도 젖먹일 때는 나를 등에 업고- - -흐으- - -흑- - - 이런 거 상상이 되요? 아니 본 적이나 있을라나- - -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얘기지- - -- 흑- -"
혀가 풀릴대로 풀린 그는 술이 머리꼭지까지 올라있다.
말이 없던 그가 술이 취하니 어찌나 말이 술술 나오는지 듣는 내내 정이는 마음이 짠하기도,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쩌라구? 자기 엄마가 허리디스크에 무릎 관절염에- - 몸이 망가져서 잘 걷지를 못한다고- - -그래도 이 지겨운 한국으로 절대 오고 싶지 않았다고. 엄마를 버린 아버지를 용서 할 수 없었지만, 결국 아버지 돈으로 공부하고 미국까지 도망쳤다고- - -그래서? 그래서 그게 어떻다구? 옛날 옛적에 고생했으나 지금은 행복- - 그러면 된 거 아닌가? 근데 도대체 언제 적 얘기지?'
"정신 좀 차려봐요- - 이젠 집에 가야겠어요. 11시예요- -"
택시에 그를 실어 보내고 정이는 집에 돌아와 누워도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과거가 무거운 사람은 싫은데- - - 뭔가 쌓인 게 많은 사람은 그 트라우마가 평생 발목을 잡을텐데- - -어쩐다- - -?'
두 사람이 만난 건 두 달 전이었다.
5월 말. 정이는 퇴근하려고 건물 입구로 나섰다.
낮 동안 화창했던 하늘이 웬일인지 갑자기 흐려져 소리없이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정이가 살면서 제일 싫은 일 중 하나가 비를 맞는거였는데, 우산이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멍하니 하늘만 올려보고 있었다.
"이거 쓰고 가요"
불쑥 내밀어진 우산을 보고, 우산 준 사람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