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 황보름

황보름, 클레이하우스

by 우이나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올 6월께 읽은 소설이다. 작가님이 가진 따뜻한 문체독특한 시야는 평범하고도 일상적인 삶을 좀 더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는 매력이 있다.


사진 출처. 클레이하우스





소설과의 첫 만남



아주 우연한 변덕으로 교보문고 본점으로 걸음을 옮겼던 날이었다. 괜찮은 소설을 한 권 고를까 하여, 한 시간 넘게 국내외 소설 코너를 어슬렁거렸다. 이미 읽은 책들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도 많았지만, 눈길을 사로잡는 책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책의 외관을 꽤 중시 여기는 사람에 속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버려야 할 습관에 가깝겠지만.)


오랜만에 본점까지 걸음을 했는데 아쉬웠다.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만 손에 쥔 채 이대로 집에 가는 건가 싶었지만. 계산대로 향하는 길에 문득 신간 코너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걸 보았다. 황보름 작가님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란 책을 홍보하는 코너였다. 나는 서점 내에서 한 시간이나 머뭇거리던 손길은 거두고는 아무런 고민 없이 황보름 작가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책 표지에 담긴 노란 조명따스해 보이는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던 탓도 있지만,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끌렸다. 물론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라는 인사를 매번 '안녕하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착각하곤 하지만, '어서 오세요'든 '안녕하세요'든 서점에 오라는 짧은 글귀가 내 시선을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서점이라는 단어 하나로 내가 지닌 기대와 상상은 이미 시작되어 버렸으니까.





소설 속 클리셰



만족스럽게 읽은 책이기에 ‘이 책은 여타 다른 책들과는 완전히 달랐고 독특했어요!’라고 칭찬하고 싶지만. 이 소설에도 익숙한 클리셰는 존재한다. 요즘 화두로 오르고 있는 워라벨, 번아웃, 결혼 생활, 그리고 우리네 이웃에 관한 이야기들이 소설 속에서 주를 이루고 있다.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 직장을 그만두고 이혼을 선택한, 휴남동 서점의 사장 영주. 오랜 취준 생활에 지쳐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려다 영주의 서점에서 바리스타로 일을 하게 된 민준. 휴남동 서점의 단골이자 아들 바라기인 민철 엄마. 반복되는 학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민철. 뼈를 갈아 넣을 정도로 일을 해줬지만 회사에서 인정을 받긴커녕 정직원조차 되지 못한 정서. 그리고 그 외, 서점을 찾아오는 모든 인물들.


주위에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사람 냄새나는 친근한 이들이 이 소설의 전체를 이끌어 간다.





이 찻집도 오래도록 기억날 것 같습니다. 그런 느낌이 들어요.
미래의 수많은 순간에 지금 이날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요.

소설 속, 휴남동 서점의 사장이자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영주는 휴남동에 뿌리를 내리면서 안정을 찾게 된다. 한때 워커홀릭이었고 일이 좋아 일부러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남자와 결혼도 했지만, 갑작스레 번아웃이 찾아오면서 그녀의 생활은 엉망진창으로 뒤엉키게 된다. 처음 겪는 낯선 감각, 그리고 처음 겪는 당혹과 아픔에 영주는 남편의 무조건적인 이해를 바라지만, 일을 '행복의 기반', 그리고 '만족의 수단'으로만 여기던 남편은 그녀를 충분히 이해해 주지 못했다. 물론 그도 나름의 노력을 하긴 했지만, 영주의 남편이 보여준 방식은 영주가 바라는 방식과 정도가 아니었다. 결국, 영주는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게 된다.


소설은 후반부로 넘어가기까지 영주의 비밀을 조금도 털어놓지 않는다. 그저 독자들의 궁금증을 가속화시키며 영주가 왜 승우의 시그널에 둔감하게 반응을 하는지 의문을 제시하게 만든다. (승우가 영주와 함께하는 찻집, 그리고 영주와 함께하는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대놓고 말을 하는데도, 영주는 승우의 속뜻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소설 속에 묘사된 승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빤히 느껴져서, 승우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영주의 모습에 답답함이 이는 동시에 영주의 과거사에 대해 궁금증을 들끓게 한다. 바로 그 시점 즈음. 영주의 과거가 말갛게 드러나며 독자는 영주의 사정과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구성 자체가 작가님이 의도적으로 심은 클리셰일 것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은연중 승우가 언제 또 나올는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영주가 굳이 승우를 사랑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소설을 읽다 보면 왠지 모르게 승우를 응원하게 된다. 아마도 그가 보여주는 마음의 변화와 표현의 방식이 꽤 로맨틱해서 그런 듯싶다. 뭐랄까. 타오르듯 열렬하진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진솔하달까. 승우의 모습에선 성숙한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담백하고도 덤덤한 감정이 자주 보인다. 마치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모과청처럼 말이다.


이 소설은 어째서 인물들의 연애사마저 공감이 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도 작가님이 지닌 시선적인 태도에 있을 것이다.




작가의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린다면,
그 건드림이 독자가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면, 그게 좋은 책 아닐까.

황보름 작가님이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소설의 전반부에서 드러난다. 삶을 이해하는 작가였으면 한다고. 그리고 작가가 지닌 깊은 이해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렸으면 한다고. 




이 소설이 지닌 매력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익숙한 공간, 익숙한 인물들을 통해 잔잔하게 펼쳐진다. 김호연 작가님의 '불편한 편의점'처럼 사람들에게 익숙한 장소를 소설의 배경으로 택하긴 했지만, 이 책의 특별함은 소설 속 배경이 서점이라는 점에 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엿보는 수단이 '책'인데, 마침 소설 속 주인공들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 '서점'이니. 우리가 현재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휴남동 서점이라는 곳에서 주위를 엿보고 있는 건지 죄 헷갈리게 만든다.


독자가 손에 쥐고 있는 '책'과 소설의 주 배경인 '서점'이 책에 몰입한 독자들에게 마치 서점 속에 있는 듯한 재미난 착각을 선사한다. 작가님께서 의도한 장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독특하고도 흔한 배경 덕분에 '책'과 '서점'의 연결고리가 더더욱 의미 깊게 여겨진다.




몇 번이고 다시 찾게 되는 문구



누군가는 사랑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누군가가 사랑만으로 살 수 있는 것처럼.




정답을 안고 살아가며 부딪히며, 실험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다 지금껏 품어왔던 정답이 실은 오답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정답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우리의 인생.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 안에서 정답은 계속 바뀐다.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 우선은 해보는 수밖에.
내가 그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지 아닌지를 알려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그 일이 아닌 다른 무엇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다.
삶은 미묘하며 복합적이다.
삶의 중심에서 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행불행을 책임 지진 않는다.



마무리하며



이 소설은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독자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넨다. 우리네의 흔한 모습이라서, 친한 친구의 이야기라서, 혹은 가족들의 이야기라서 이 소설은 잔잔하게 독자를 건든다. 무엇이 내면을 건드는 건지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읽다 보면 느껴진다. 이 책은 누구나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나의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는 걸. 심지어, 인물들의 연애사마저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는 아주 늦은 밤, 자기 직전에 노오란 스탠드 불을 켜고서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시간조차 숨을 죽이는 담백한 밤에 여러분도 한 번쯤 휴남동 서점으로 놀러 가보시길 바란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꿈속에서 모과청 하나를 선물 받게 될지도.




오늘 즐거웠다고 말하는 영주에게
승우가 코트 주머니에 넣어놨던 모과청을 건넸다.
"마실 때마다 행복해지시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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