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할 일. 물 쓰듯 생각 펑펑 쓰기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갈 때면, 엄마는 늘 단번에 물건을 산 적이 없었다.
시장 곳곳을 누비며 조금이라도 값이 싼 곳을 찾고, 그곳에서도 한참을 고민하다 물건을 샀다.
어렵사리 최종 픽된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담을 때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있었다.
“돈이, 돈이 아니네.”
오늘 아침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식재료와 간식을 사기 위해 집 앞 마트로 갔다.
우유와 식빵, 치킨너겟, 콩나물, 요플레만 샀을 뿐인데 몇백 원 모자란 삼만 원이 나왔다.
국거리와 너무 비싸 내려놓은 딸기까지 장바구니에 담았다면 오만 원이 넘는 건 일도 아니었겠지.
몇 가지의 품목이 단출하게 찍힌 영수증을 보며 ‘돈이, 돈이 아니네.’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고작해야 몇백 원, 몇천 원 차이인데 힘들게 돌아다니지 말고 그냥 사.”하며
핀잔을 주던 속 모르던 딸이 두 딸의 엄마가 되어서야 그 발품을 헤아린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사는 일이 쉽지 않은 요즘이다.
이럴 때일수록 허리띠를 더 바짝 졸라매어야 한다던데. 그럼 숨쉬기가 더 어렵지 않나.
숨 쉬는 것만으로도 돈이 드는 세상에 살아서 그런가.
의도치 않게 가뿐한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런 쓸모없는 생각을 하다 혼자 웃었다.
아무렴 어때.
나의 엄마가 시장 곳곳을 누비며 아끼고, 아낀 돈으로 살림을 늘렸던 것처럼
나도 머릿속 곳곳을 누비며 얻은 생각으로 단단한 요즘을 넘길 힘을 얻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생각은 공짜다. 물 쓰듯 펑펑하면서 살자.
(엄마! 물도 아껴 써야 해. 선생님이 그랬어. 라며 수도꼭지를 잠그는 둘째 딸의 잔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