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에서 육아 중인 쓸데없이 고학력인 여자의 이야기
덴마크로 이사를 오고 한 달 만에 임신을 했다.
덴마크어도 문화도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상태에서,
덴마크 엄마들, 그들만의 세계로 입성을 해버렸다.
이곳에서 출산과 육아를 한 지 이제 2년, 또 5개월 전 8개월의 아기를 동반한 이 주간의 한국 방문을 통해 생생히 느꼈던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후 하나씩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물론 어디가 맞고 어디는 틀리다의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두 나라에서 모두 이방인인 우리 가족의 단편적인 경험들을 담아 볼 뿐이다.)
첫째, 근처 약국에서 구입한 임신 테스트기로 양성 반응을 확인하고 나니 첫 번째 어려움에 봉착했다.
산부인과를 어떻게 가지?
아니, 그냥 주변 산부인과 검색해서 찾아가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덴마크에선 이게 또 그렇지가 않았다. 왜냐, 여기선 산부인과 병원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응?
덴마크는 모든 합법적 거주자들에게 담당 의사가 있고 어떤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면 그 의사에게 먼저 확인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그 당시 난 거주증이 없었다는 것. 그렇기에 배정받은 의사도 없었다는 것.
다행히 직장을 통해 먼저 거주증을 발급받은 남편을 통해 그의 병원으로 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거의 백 프로 예약제로 운영하기 때문에 덴마크어로 나와있는 전화 안내를 구글 번역기로 돌려가며 겨우겨우 예약했다. 모든 게 처음이었기에 온라인 예약은 생각도 못 했었다.)
둘째,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던 의사와 겨우겨우 미팅을 끝내고 깨달았다.
뭐? 아기를 의사 없이 산파와 낳는다고?
그렇다.
덴마크에선 임신과 출산 그 모든 과정을 산파와 함께 한다. 간단한 소변검사를 마친 후, 나는 임신기간 동안 출석해야 하는 산파와의 미팅일정들을 받았는데 놀란 점은 의사와는 거의 만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의 궁금증은 진료를 마치면서 조심해야 하는 음식들이 있냐는 나의 질문에 관한 의사의 대답으로 풀렸다. "그런 건 없어. 넌 임신을 한 거지 아픈 게 아니야."
담배나 술을 이제 와 시작하는 게 아니면 매일 마시는 커피도 좋아하는 매운 음식도 다 괜찮단다. 아픈 게 아니기 때문에 임신기간 동안 의사와 만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 한 문장으로 바로 납득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외국에서 첫 임신과 출산을 하게 된 내가 두고두고 돼 뇌이는 말이 되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당연한 말인데 그 당시엔 그렇지가 않았다.
셋째, 출산예정일을 한주정도 앞두었을 당시 8시간 이상 태동이 느껴지지 않아 새벽 4시에 급히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개인병실에서 6-7시간 정도 있으면서 2시간마다 의사가 들어와 체크를 했는데도 태동이 없어 유도분만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유도분만 준비 바로 전 초음파 검사에서 아기가 아주 조그맣지만 확실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의사들도 그제야 안심을 했는지 우리에게 웃어 보이며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힘들었던 마음을 부여잡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병실을 나와 진료비 납입 창구를 찾았다. 새벽에 입원을 해 의사도 여러 명이 들어왔었고 초음파 검사도 3번 이상 했었기에 당연히 퇴원 절차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복도를 이리저리 다녀 보아도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닌가.
병원 사무실 창구가 보여 급히 다가가 진료비는 어떻게 납입을 해야 하냐고 물어보니,
진료비는 필요 없어. 그냥 나가면 돼~ 잘 가!
라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일반 진료도 돈을 낸 적이 없는데 대학병원 응급실 야간진료비도 없구나.
물론 월급명세서에서 빠져나간 세금을 보면 "병원비를 안 내는 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 사실 병원비를 안 낸 게 아니라 미리 낸 것이니.
아기가 14개월이 되어 걸음마를 시작한 지금도 임신 당시의 기억들이 생생한 것을 보면 새로운 나라에서 첫 임신을 하며 모든 것이 새로왔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