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사법고시 합격했다고 현수막 거는 그 마음이 지금 내 마음 같을까? 내 자식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현수막에 큰 글씨로‘합격 축하’라고 써서 온 세상 사람 다 보라고 걸어놓는다. 큰 딸아이 임용 고시 합격에 관해 이야기를 하려는데 괜스레 눈물까지 나고 주책이다. 딸아이 시험에 내가 러닝메이트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딸아이 고생의 끝이 보인다. 1주일쯤이면 1차 시험 결과가 발표된다. 지난겨울부터 고생이 시작되었다. 작은 어깨에 아주 큰 무게의 책을 싣고 1년쯤 고생할 준비를 시작했다. 공부 순서를 하나씩 하나씩 쓴 공책에는 총 5과목의 학습 목표가 굵은 글씨와 색칠한 글씨로 빼곡히 쓰여 있었다. 그 순서대로 공부하면 틀림없이 합격할 수 있을 것처럼 아주 세밀하고 명확한 내용이었다.
벚꽃이 여기저기 흩날려서 대학교 중간고사쯤인 걸 알았다. 꽃구경에 마음을 뺏길 만도 한데 계획대로 시간 맞춰 공부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날씨가 더워지니 엉덩이에 짓무름이 생겨 책을 들고 집 안 곳곳을 걸어 다니며 공부하는 것을 봤다. 참 대견했다. 짓무름에 약을 발라주며 “이 고생이 엄마는 아름다워 보이네.”라고 했더니 큰딸은 “네.” 하더니 고개를 파묻고 운다. 큰아이가 늘 씩씩하고 잘 웃어서 힘이 안 드는 줄 알았는데, 또 꿀벌처럼 날개를 힘차게 펴고 즐겁게 날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얇은 날개에 얹은 책 무게가 무겁고 힘든 그것이 합격이라는 두 글자를 생각하면서 참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고 큰딸이 별 짜증 없이 공부한다고 생각해서 임용 고시 준비도 즐겁게만 하는 줄 알았다. 그 생각은 100% 오류로 확인됐다. 그 오류는 2학기 시작 때쯤 정확하게 확인되었다. 코바늘 뜨개질로 하루를 보내며 아침나절에만 잠깐씩 책을 본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공부는 안될 때 하면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잘 될 때 해”라고 교과서 같은 말로 큰딸을 달랬다. 아니 나를 달랬을까? 어느 날은 퇴근 후 집에 오니 코바늘로 뜬 작은 가방 2개가 있었다. “오늘은 공부를 한 자도 안 했구나” 하고 생각했다. “공부가 어지간히 안 되었나 보네. 하루에 작은 코바늘로 가방 2개를 뜬 걸 보니.”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는 나를 발견했다. 그 뒤로 손가방 3개를 더 뜬 후에 큰딸은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언제 슬럼프가 있었냐는 듯 열심히 말이다.
내일이면 1차 시험일이다. 우리 아이의 성적이 어떻게 나올지 설렘으로 지켜보았다. 시험장까지 큰딸을 데려다주고 절에 가서 부처님께 100번도 넘게 절을 올렸다. 1년 동안 아이를 지켜보느라 나도 힘이 들었는지 절을 하는 내내 눈물이 났다. 한참 동안 절도하고 울기도 한 후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발표일까지 잠도 설치고, 직장 일도 못하고 한 달 때쯤 지났을 때 기쁜 소식이 들렸다. 최종 관문까지 가는 1차 합격 소식은 첫 아이 태어날 때 울음소리처럼 반가웠다. 딸아이는 곧 2차 준비를 시작했다. 다시 꿀벌 날개에 무거움과 부담감을 장착하고 수업시연과 면접 준비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나는 면접 복장과 미용실을 예약하며 2차 시험을 도왔다. 2차 시험 보고 나온 딸을 고생했다고 안아주는데 아이가 서럽게 운다. 나는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시험 보고 울고불고하는 애가 아닌데 이 폭풍 오열의 의미에 겁이 덜컥 났다. 한참을 울고 난 후 딸아이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3차를 잘 봐야 할 것 같아요.” 2차를 망쳤다는 뜻도 함께 내포되어 있었다. 딸아이의 마지막 시험을 앞두고 나는 또 러닝메이트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딸아이의 시험 불안을 함께 나누고, 심층 면접 준비에 면접관 역할을 하면서 “ 지금이 시각도 곧 지나간다며, 다 잘 될 거라고 ” 누구나 하는 말도 했다.
큰딸은 운 좋게 최종합격을 하고 3월이면 모교에 국어 선생님으로 첫 출근을 한다. 대학 4학년 재학 중에 임용 고시에 합격한 이 거짓말 같은 일이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다. 나는 매일 밤, 큰딸아이 자랑을 혼잣말로 마음껏 하고, 내 마음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 내 딸 장하다.”라고 쓴 현수막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