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출근

by 김정

서러움으로 뭉쳐진 못생긴 마음속에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퇴사라는 것이 내 나이 줄에 속한 한 부분일 텐데 어찌 이리도 서러운지 모르겠다. 이름만 달랐지 계약만료 퇴사나, 사직으로 퇴사나 봉급이 안 나오고, 출근을 안 하고, 점심시간의 작은 행복이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계약만료 퇴사는 여러 번 있었던 일이어서 사직서 제출 때에는 이렇게 많이 서러움과 그 무엇의 감정이 나를 꽉 채울지 몰랐다. 사직 후 얼마간 힘들었던 마음은 분한 마음이었다. A는 왜 나에게 소리치고, 화를 내서 나를 울게 했을까? A는 옆에 나보다 어린 직원들도 있었는데 왜 나에게 수치심을 주는 말로 나를 부끄럽게 했을까? 왜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눈을 희번덕하게 쏘아보며 심한 폭력을 가했을까? 이 마음 그대로 피해감을 글로 써서 어떤 인터넷 사이트라도 올려볼까? 생각도 했다. 문과생의 고급 공격처럼 유려한 문장으로 말이다. 내 마음이 꽤 일방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잠을 자다 깨서 생각하고, 설거지하다가 생각하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 경험들이 쌓여서 A가 했던 말과 행동은 지나간 어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생각해 주는 것이 A의 폭력에 서사를 붙여 의미를 더해주는 것 같고 또 그 의미는 나에게 다시 2차 가해로 폭력 되었다. 그만 종료하고 싶다.

나는 옆 사람이 말리기도 했는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나는 사직을 당했다는 생각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업무와 불편한 사람들 속에서 도망자가 된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다. A가 나에게 가한 이런저런 행동들이 그저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A는 보통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을 왜 폭력처럼 했을까도 생각해본다. 그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면서 말하는 여유와 습관을 미처 못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사직서 제출 이후에 든 생각이다. 사직서 제출 전에 A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면 퇴사까지는 가지 않았을까? 그것도 지금 마무리 지을 생각 뭉치는 아니다. 어느 날 여러 대인관계 경험들 속에서 발견하고 싶다. 그때 A의 행위와 감정 속 폭력들을 말이다. 며칠 생각 정리 끝에 나는 한 가지를 결정했다. 직장에서 오랫동안 참는 법을 배우기보다 참을 일과 못 참을 수 있는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명확하게 구분하여 참을 일은 참고, 못 참아도 될 일은 즐겁고 건강하게 화내볼 참이다.

반도체 공장에서 30년 근무했다. 계약 종료로 퇴사 처리가 되고, 또 신규 계약을 하고, 다시 다니고 하는 방법으로 30년 근속했다. 일을하면서 억울함도 있었고, 분한 일도 있었지만, 우리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꼬박꼬박 자동이체로 빠지는 돈도 많아서 일은 꼭 하여야 했다. 그렇게 근속한 회사에 막상 내가 먼저 사직서를 용감하게 제출한 것이다. 당장 봉급이 안 들어오니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작은아이를 어떻게 뒷바라지를 해줄까 싶어 덜컥 겁이 난다. 회사라는 조직은 냉정하기도 하고 건조하기도 해서 내 개인 사정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 때때로 마음속 이런저런 나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감정이 많았다. 남은 휴가를 소진하고 퇴직금을 받고 정말 백수가 되었다. 세 번의 강산이 변하는 동안 나는 회사와 집만 쳇바퀴 돌았더니 주위에는 같이 놀 친구 한 명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할 일이 없어 혼자 어색한 시간을 보냈다. 집안일은 좀처럼 손에 익지 않아 부엌살림은 낯설기만 했다. 회사 근처에라도 가볼까? 직원들과 함께 갔던 식당 근처를 서성이다 우연히 만난 듯 점심 식사를 같이하고 올까? 하루가 왜 이렇게 긴지 시간이 좀처럼 가지 않았다. 한참 텔레비전을 봤는데도 점심때는 아직이다. 문득 “ 내가 지금 그만둔 회사를 왔다 갔다 할 때가 아니지. 퇴사한 것을 가족들에게 말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쉬면서 내 마음 살피느라 또 서운함을 달래느라 폭탄을 가지고만 있었다. 아이들은 요 며칠 엄마가 집에 있어 좋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어 집에 있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엄마 수입이 없어서 작은아이가 학교 휴학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해야 할 텐데. 당최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용기를 내어 아이들에게 말을 했다. 엄마가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고. 담담하고 별일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내 눈엔 벌써 눈물이 글썽거렸다. 내가 눈물을 보이면 애들이 걱정할까 남의 일처럼 퇴사한 사실만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작은 아이가

“엄마, 좋은 곳으로 이직하려나 봐요. 엄마 새옹지마라는 말 알죠?”라고 좋은 일이 생길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방긋거리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면 좋지 뭐.”라고 말하고 이 불편한 상황에서 도망가고 싶어 마당으로 나왔다. 마당에는 여름꽃이 한창이었다. 분홍색 봉숭아 꽃이 땅바닥에 붙어 피었는데 내 못생긴 마음이 분홍색 꽃에 툭 하고 떨어져 예쁜 마음 색깔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이 쉰 살에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새롭게 마음을 채우는 불안 중 한 꼭지이다. 경력직 채용을 찾아본다. 마음속 근육을 키워 자신감을 넣어서 채용과정에 당당함이 있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걱정과 불안이 의기소침으로 꽉 차 있다. 여기저기 회사에 같은 일 경험으로 서류를 넣었다. 서류부터 떨어진 곳도 있었고, 면접 전형까지 간 곳도 있었다. 면접을 보면서 회사에서는 솔직히 말한다면서 경력이 엄청 좋지만, 우리 회사에서 함께 근무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부서원들이 불편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마지 못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동의한다. 너무 촌스러운 기업 가치관이라고 또 나이, 성 등으로 채용에 불이익을 주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큰 소리로 말해주고 싶었다. 아니 내 나이가 어떠냐고 대들고 싶기도 하고, 나이대접 안 해주어도 괜찮으니 제발 뽑아달라고 매달리고 싶기도 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은 가슴 속 깊은 곳에 숨겨두고 짐짓 사무적인 표정을 지으며 괜찮은 척 면접장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냥 눈물이 났다. 그 뒤로도 두 곳으로부터 채용 불가 문자를 받았다. 자꾸만 위축되는 내 마음을 보면서, 또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는 나를 발견하면서 재취업을 포기하게 되었다. 양가감정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그러던 중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대기업에 입사 지원을 하였다. 회사 규모와 연봉이 높아서 주눅이 들었지만 큰 용기를 내었다. 다행히 1차는 서류 합격 통보를 받았다. 블라인드 채용이라는 것이 나이와 학력에 대한 선입견 없이 일 경험이 회사 사정과 맞으면 합격인 줄 알고 있었지만 계속 불합격 통보를 받았던 나는 1차 합격에도 엄청 기뻤다. 면접은 어떤 자세로 볼까 하고 며칠 밤을 고민했다. 나는 나이를 감추지 않고, 내 경력의 장점을 곰곰이 생각하여 또박또박 말해 볼 요량이었다. 옷장에서 단정하고 얼굴색과 잘 맞는 옷차림을 하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이전 면접은 내 나이를 낮출 수 있는 귀여운 옷을 입고, 내 경력에 잘난 척을 하는 면접 태도였다면, 이번 면접은 편안한 마음으로, 내 경력을 낮추지도 내 나이를 숨기지도 않았다. 여러 질문 중에 “당신은 우리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라고 면접관이 물었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처음 본 면접관에게 맨 처음 공장 생활을 할 때의 첫 마음을 고백했다. 옆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을 나눠주는 든든한 동료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면접관은 참 좋은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며 흐뭇해했다. 면접은 생각보다 길어져 30분도 넘게 진행되었다. 면접을 보고 속이 후련했다.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불합격해도 감당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날 저녁에 식구들끼리 면접 본 이야기를 하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문자가 한 통 왔다. 합격 문자이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서 남편 보고 읽어달라고 했다. 남편은 잘 들어 보라면서 “귀하는 이번 채용시험에 <합격>되어 알려드리오니.”로 시작하는 안내 문구를 읽어주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생각나 한 참 울었다. 애들 앞에서 너무 울었나 싶어 조금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작은 아이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쉰이라는 나이를 부끄러워하지도, 내가 젊은 직원들 사이에 끼어서 힘들 거라고 미리 걱정하지도 않고 굵직한 회사에 굵은 소금 알갱이로 회사에 천천히 스며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 몇 달 입사와 퇴사, 그리고 새로운 입사에 대해 질서를 지어 주고 싶다. 짧았지만 강력했고, 고약했지만 달달 했던 순간순간이 모두 나에게 아끼는 이력이 되었다. 나는 며칠 후면 최종 합격한 회사로 처음처럼 출근을 한다. 며칠 전 받았던 거짓말 같은 <합격> 문자는 휴대폰 속 갤러리에 저장되어 사직서가 쓰고 싶어질 때 한 번씩 나를 다독여 주는 작은 위로가 되었다. 나는 격려한다. “ 너 참 고생 많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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