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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건 Jan 25. 2021

보여도 보이지 않는 흑인 여성들

영화 < The Help> (2011)가 흑인 여성을 다루는 방식



※스포일러 주의

※주관적인 견해가 들어가 있습니다.

사진과 포스터는 영화를 캡쳐하거나 네이버 영화에서 가져왔습니다.



<The Help>에는 흑인 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2020년 미국에서 경찰이 흑인을 과잉 진압하여 살해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의 영향으로 흑인과 관련한 영화들이 부상했다. 그 여파로 영화<The Help>는 미국 넷플릭스 스트리밍 TOP 10 영화에 18일간 순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목졸림으로 사망했다는 검시관의 부검결과가 나온 다음 날인 6월 2일부터 19일까지 netflix top 10 movies 순위에 올라갔다.)

 <The Help>에 출연한 배우들은 이에 대한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흑인 가사노동자 에이블린역을 맡았던 비올라 데이비스 배우는 ‘베네티 페어’에서 <The Help>에는 흑인 캐릭터의 인간성에 풍부한 내러티브를 부여하지 않았으며 영화 속 ‘흑인’의 의미는 백인 관객을 위한 일이었다고 인터뷰했다. 그는 이 인터뷰 전에도 2018년부터 “이 영화가 흑인을 위한 영화가 아님을 깨달았다.”는 언급을 지속해왔다. ‘힐리’를 연기한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 배우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The Help>는 백인의 관점을 통해 전해지는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언급했다.

 <The Help>는 1963년도 미국에서 차별과 억압받던 흑인 여성 가사노동자들이 자신의 부당한 삶을 폭로하는 책을 발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서사만 보면 흑인 여성의 인권을 말하는 듯한 이 영화를 출연 배우들이 앞장서서 비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The Help>에서 어느 부분이 문제 제기가 되는지 알기 위해서는 흑인 여성의 역사적, 사회적 의미와 영화가 흑인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노동하는 흑인 여성

 테레사 드 로레티스에 따르면 젠더는 계급, 집단 사회와 그 안에 존재하는 개인 간에 맺어진 사회적 위치와 관계를 말한다. 젠더는 성 외에도 계급, 인종, 교육, 문화 등 여러 사회적 맥락을 통해 구성된다. 따라서 같은 여성일지라도 계급과 인종에 따라서 경험하는 젠더 테크놀로지가 다르다. (쇼히니 초두리, 2012, p.129)

 <The Help>는 흑인 여성이 어떻게 차별당하고 있는지에 몰두하는 반면, 흑인 여성들의 문화와 특수한 사회적 위치에는 무심하다. 심지어 분명 흑인 여성들만이 겪는 젠더 테크놀로지가 있음에도 흑인 여성 캐릭터에게 백인 여성의 젠더 테크놀로지가 적용하고 있다.



 미국의 흑인 여성은 특수한 사회적 위치에 놓여 있다. 미국의 흑인 여성들은 재산을 소유하기는커녕 백인들의 ‘재산, 소유물’이 되어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아닌 백인 소유주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노예제도에서 벗어나서도 흑인 여성들은 빈곤과 경제적 착취를 겪어야 했다. 그런 흑인 여성에게 가사노동, 유급 노동은 생계를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다. 따라서 영화 속 백인 여성 캐릭터인 스키터가 생각하는 ‘일자리’와 흑인 가사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일자리’는 확연하게 다르다. 스키터에게 ‘일’이란 독립, 주체, 여성 결정권 증가를 뜻하지만, 흑인 여성에게는 ‘빈곤함’, ‘생계를 위한 수입 확보’ 등의 의미를 떠오르게 한다.

 어느 정도 남편의 임금으로 생활 유지가 가능한 흑인 여성 중에는 유급노동을 그만두는 경우도 존재했다. 백인 중산층 계층을 모방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신의 가정을 우선시하여 노동시장에서 착취당하는 신체라는 흑인 여성의 젠더 테크놀로지에 저항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 2009, p.107)

 에이블린의 경우 결말부에 가서 가정으로 복귀가 아닌 ‘사회 진출’, ‘자아실현’의 목적을 달성하는 개념으로써 일자리를 꿈꾸고 있다. 에이블린의 ‘일자리’는 당시 흑인 가정노동자의 사회적 맥락과 일치하지 않는 백인 여성의 시각에 가깝다. 안정적이지만 저임금이었던 가사노동을 해야만 했던 당시 흑인 여성들에게 “한 백인 여성이 찾아와 책을 함께 내주고 인세를 공평하게 나누어 경제적인 문제 없이 성희롱과 착취 없는 노동 환경에서 원하는 직업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는 결말은 상당히 환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가정에서의 흑인여성

 흑인 여성들은 가정 밖으로 나가 남성들과 구분되지 않은 고된 육체노동과 경제적 착취를 경험하며 자신의 가정과 아이를 개별적으로 돌보기가 어려웠다. 때로는 “결혼, 시민권, 인간성마저 허용되지 않기도 했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 2009, p.97) 그리하여 흑인 여성에게  ”남성은 일하고 여성은 가정을 돌본다.“는 미국의 전통적 가족관이자 젠더 이데올로기는 적용될 수 없었다. 가정을 돌보지 못하는 실재하는 흑인 여성들에게 내적 갈등이 분명 있었을 테지만, 영화 속 흑인 가사노동자인 미니는 공과 사를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소위 '슈퍼 맘'처럼 묘사된다.

 흑인 여성의 모성은 백인 여성에게 요구되는 전업주부로서 무급노동을 하는 모성과 달랐다. 이들의 모성은 개별적인 돌봄이 아닌 확대 가족, 공동체적 육아 방식으로 대체되었다. 영화에는 이러한 공동체적 육아, 확대 가족의 이미지가 부재하다. 흑인 여성들 사이에 일상적인 연대도 찾아보기 어렵다. 미니와 에이블린은 유대가 깊은 관계임에도 에이블린이 식구가 많은 미니의 살림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따금 상대방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이상 에이블린은 자신의 집에 혼자 분리되어 외로운 인상을 남긴다.      




내부의 외부인인 흑인 여성



 인종과 젠더의 측면에서도 흑인 여성의 위치는 변별성을 가진다. 페트리샤 힐 콜린스에 의하면 흑인 여성들은 “내부의 외부인“의 정체성을 가진다.

 페미니즘 운동과 여성학은 백인 기득권 남성의 헤게모니에 반발하였다. 그러나 서구의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 여성에 초점을 두고 있어 유색인종의 여성들은 적극적인 참여자가 될 수 없었다. 흑인 집단 안에서 흑인 여성은 백인 여성이 경험하는 가부장제와는 또 다른 남성주의적인 남성 흑인 사상에 계속 투쟁해왔다. (패트리샤 힐 콜린스, 2009, p.40)

 사회와 가정에서 ‘내부의 외부인’이었던 흑인 여성은 집단에서 외부인인 동시에 소속되어 있으면 보기 어려운 시각으로 현실과 사회 집단을 통찰하는 관찰자가 되기도 한다. ‘가사노동자’라는 직업 안에도 ‘내부의 외부인’의 특성이 있다. 흑인 여성 가사 노동자는 백인 중산층 가정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자신은 경제적 착취를 당하며 백인 가정에 절대 소속할 수 없는 외부인임을 지각한다. 동시에 백인 가정에 거리를 두고 내재하는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를 발견하는 관찰자가 된다.

 에이블린의 나레이션으로 전반적인 배경, 상황, 인물 성격을 관객에게 전하는 영화 연출 방식으로도 흑인 가사노동자의 ‘내부의 외부인’의 특성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에이블린은 자신이 일하는 가정의 백인 여성이 젠더 이데올로기에 갇혀 대문자 여성(Woman, 표상으로서 여성)이 되기 위해 자신과 아이를 희생하는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있다.

 흑인 여성 가사노동자들은 사회적, 가정적, 직업적으로 ‘내부의 외부인’의 특별한 정체성을 가짐으로써 헤게모니와 사회문제를 체험하고 관찰한 집단적 지혜를 가진 지식인들이라고 될 수 있다.

 영화에서 스키터는 흑인 여성들에게 나타나 억압과 차별에 관한 저항의식을 고취시키고 실현해주는 역할을 맡은 영웅적인 인물 같다. 그러나 흑인 여성들은 이미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공동체 생활을 통해 기존에 가진 저항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스키터와 인터뷰하기 위해 한 자리에 흑인 가사노동자들이 모인 장면 외에는 영화에서 많은 가사노동자가 모인 장면이 없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영화에는 미시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경험과 지식을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흑인 가사노동자의 모습이 비치지 않았다.     




'억압받는 약자로서 흑인 여성 재현 

 주인공 에이블린은 부당한 이유로 주간 가사노동 근무에서 해고당한다. 자신이 돌보던 백인 아이 메이는 에이블린을 찾으며 울지만, 에이블린은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백인 가정에서 나와 길을 걷는다. 처음에 눈물을 흘리던 에이블린은 다시는 가정부 일을 하지 않고 작가로 살아가기를 결심하며 점점 미소를 지은 채로 앞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이 결말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에이블린의 능동적인 출발로 표현하는 듯하다. 그러나 희망차고 낙관적인 결말 안에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흑인여성을 재현 하는 방식의 문제가 내포한다.

 영화 서사 안에서 에이블린은 흑인 가정부의 억울한 실상을 폭로하는 책을 쓰는데 공헌하고 결국 가정부 일을 그만두고 자신의 꿈을 좇는 ‘능동적인 흑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에이블린의 인종차별에 대항처럼 보이는 행동에는 항상 촉발제가 있다. 바로 백인 여성이다. 책을 쓰게 되는 것도 스키터라는 백인 여성의 제안과 설득이 있었고 작가의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 역시 백인 여성이 에이블린을 해고한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마주하게 되면 관련한 생각, 욕망을 떠올리고 행동으로 옮긴다. 반면 에이블린은 사건이 발생한 후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하거나 행동하면 그 행동에 대해 생각하고 소극적인 반응을 취한다.


 자신을 하대하던 백인 여성에게 ‘똥파이’를 먹이는 담대한 미니도 결국에는 “매맞는 아내”였더라는 식의 재현은 흑인 사회 내부 안에 있는 젠더간의 위계를 지우고 단순히 ‘억압받는’ 여성임을 강조한다.

 폭력과 차별에 무방비하게 당하는 흑인 여성의 재현과 계속 주저하거나 백인 여성을 경유하며 비교적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에이블린 캐릭터는 자칫 흑인 가사노동자를‘억압당하는 집단’으로 각인시켜 특정 집단의 성격이 지울 수 있다.(유제분, 2001, p.84)

 즉, 실재하는 흑인 개별 여성은 잊혀진 채 억압받는 집단으로 동질화할 위험이 생긴다. 이때 동질 시키는 주체는 서구이다. 백인중심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질된 개념은 결국 한 집단을 전유하고 식민화한다. 다시 말해 억압당하는 집단, 억압당하는 여성들’이 된 대문자 여성(Woman: 표상으로서 여성)에 흑인 소문자 여성(woman: 역사적, 물질적으로 실재하는 여성)들이 지배당하게 될 위험이 있다.  





   


 “나는 에이블린을 알고 미니를 안다. 그들은 우리의 할머니이고 어머니이다. 나는 영화를 통해 1963년에 그들이 백인을 위해 일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던 기분을 알고 싶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당신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듣고 싶다. 그러나 나는 영화 내내 그런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I just felt that at the end of the day that it wasn’t the voices of the maids that were heard. I know Aibileen. I know Minny. They’re my grandma. They’re my mom. And I know that if you do a movie where the whole premise is, I want to know what it feels like to work for white people and to bring up children in 1963, I want to hear how you really feel about it. I never heard that in the course of the movie.")


 “뉴욕타임즈”에서 비올라 데이비스 배우가 말한 인터뷰는 사실이다. 영화<Help>에는 흑인 여성에 관한 관심과 질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억압당하는 타자’를 지켜보는 서구의 눈이 있을 뿐이다.

 영화 속 흑인 여성 캐릭터는 계급, 인종, 젠더에 따라 경험하게 되는 사회적 맥락이 다름에도 흑인 여성의 젠더 테크놀로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의 자신(서구권)들에게 익숙한 젠더 테크놀로지를 적용하였다. 흑인의 신체에 백인의 젠더 테크놀로지가 뒤섞여 이상한 정체성을 가진 캐릭터들은 환상적이며 현실에 ‘진짜’ 존재했던 흑인 여성들을 가린다. ‘내부의 외부인’의 정체성으로 가지는 흑인 여성의 특별한 사회적 위치와 능동적인 행위의 가능성은 배제한 채, 계속 피해자, 억압과 차별에 고통 받는 이미지에 묶어둔다. 영화 <The Help>에는 아직 식민화, 타자화 백인 중심적 관점에서 탈피하지 못한 미국과 서구권 나라의 시선이 녹아있다.   






참고문헌

쇼히니 초두리, 페미니즘 영화이론, 앨피, 2012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여이연, 2009

유제분, 탈식민페미니즘과 탈식민페미니스트들, 현대미학사, 2001     

이보희, “미 검시관 “조지 플로이드, 경찰 압박으로 사망”…‘살인’ 결론“, 서울신문, 2020.06.02.,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200602500011&wlog_tag3=naver

zack sharf, "Viola Davis Feels Betrayed by ‘The Help’: ‘It Was Created in the Cesspool of Systemic Racism’", IndieWire, Jul 14, 2020, https://www.indiewire.com/2020/07/viola-davis-betrayed-the-help-systemic-racism-1234573862/

zack sharf, "Bryce Dallas Howard: ‘We Can All Go Further’ Than Streaming ‘The Help’ Right Now", IndieWire, Jun 8, 2020, https://www.indiewire.com/2020/06/bryce-dallas-howard-calls-out-the-help-white-savior-1202236013/

Mekado Murphy,“Viola Davis on What ‘The Help’ Got Wrong and How She Proves Herself”,The New York Times, Sept 11, 2018, https://nyti.ms/2N6Q5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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