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댕 동생이떠나다. (5)

열무와 나

by 고마율

열무는 소중했다. 비관적이고 우울한 생각을 할 때도 열무라는 존재가 있는 건 나에게 큰 행운이라고 여겼다.

11살 때 열무를 처음 만났다. 당시 나는 '미소의 세상'의 미소와 닮았었다. 미소보다 똑똑하지 못한 미소랄까. 정서적으로 발달이 느린 건지 결핍인 건지 감정표현을 잘하지 못했고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다. 그런 나에게 깨발랄하고, 하고 싶은 대로 제멋대로 표현하고 행동하는 열무는 늘 새롭고, 짜릿했고, 최고였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말하는 걸 어려워했다. 그렇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내가 가진 내면적인 결핍과 문제를 알지 못했다. 그저 묵묵하게 자기 할 일하는 어른스러운 아이로만 봤다. 혹은 숫기 없는 아이, 침울한 아이, 다가가기 어려운 아이였다. 난 어렸고, 그래서 내가 겪는 게 무엇인지도 몰랐고, 말을 하는 걸 어려워했던 거다.

열무에게는 내가 그냥 나였다. 열무는 나를 정의 내리지도 않았다.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길 바라는 기대도 없었다. 내가 바보 같아도 나였고, 귀찮아도 나였고, 평소와 달라도 나였다. 그래서 열무에게 열심히 종알거렸다. 열무가 어떤 반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귀찮아했을 거다. 그래도 늘 귀여웠다.

점점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난 많은 감정, 정서와 공감능력을 배웠다. 그럼에도 한결같던 열무는 내게 자식과 같아졌다. 일방적으로 내가 애교를 부리고 사람에게는 한 번도 자발적으로 해본 적 없는 뽀뽀를 하루에 수십 번 했다. 열무는 여전히 귀찮아했다. 싫은 티를 눈치 안 보고 팍팍 내는 열무는 사랑스러웠다.

10대 후반까지 학교에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져 함께 있지 못해 미안했다. 마음만은 낭만적이나 손에는 힘이 너무 많아 스킨쉽이 거친 엄마가 그동안 열무를 케어했다. 세나개같은 프로그램이나 반려동물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때여서 실수도 많아 열무는 엄마를 싫어했다. 엄마 손에서 자란 나로서는 열무가 왜 불편하고 싫었는지 공감했다. 하지만 열무를 돌봐주고 집안을 통치하는 엄마에게 뭐라고 할 깜냥이 못됐다. 나는 엄마에게 더 오랫동안 길들여져 있어 오히려 열무만큼도 반항하지 못했다.


열무가 학교 영상 과제에 참여해준 모습

성인이 되어 행동과 생각에 자유도가 높아지니 조금 더 열무에게 신경 쓸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입 주변을 미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간식을 이용해서 반복 훈련을 하다보니 공격적이던 열무가 눈 주변에서 가위가 움직여도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바야바나 간달프가 되던 열무가 원래 가진 미모를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열무에게 해주고 싶은 게 많았다. 아르바이트해서 번 첫 월급으로 열무 간식을 잔뜩 샀다. 돈 벌면 여기저기 같이 다니고 싶었다. 그러나 열무는 이미 노령견에 아프기 시작했다.

7~8 살 때부터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다. 우울해하며 사나워졌고 사람을 물기도 했다. 살도 많이 쪘다. 편식하던 식습관은 사라지고 엄청난 식탐을 보였다. 그래도 가족들은 항상 자신의 곁에 있을 것이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자 눈이 보일 때보다 더 편안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시 기운을 되찾은 지 오래되지 않아 장기 문제로 수술도 받고 슬개골 탈구도 생겼다. 심장비대증도 진행 중이었다.

떠나기 일 년 전부터 기관지 협착증이 의심되어 병원을 다녔다. 그래도 괜찮게 지낸다고 생각할 즈음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갔다가 갑자기 폐에 물이 찼으니 24시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심부전 때문인지 폐에 물이 차 물을 빼고 난 후부터 숨을 잘 쉬지 못했다. 퇴원하고 매주 약을 받아와 먹였다. 소변을 수시로 싸고 그때마다 헉헉댔다. 수분 보충을 위해 물도 많이 마셨다. 헉헉대며 물그릇을 찾다가 앞에 가져다주면 자주 물에 코를 박고 당황해했다. 물의 위치를 파악하면 바로 마시지 않고 의식을 치르듯 진지하고 멋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잠깐 들어 좌우를 살핀 뒤 촵촵마셨다. 그러고는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떠나기 며칠 전에는 물 마시기도 버거워 몇 번을 쉬면서 마셨다.

의료진분들은 열무를 다정하게 치료해주시고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다. 한 번은 열무 담당 원장님이 더 이상 나빠지지 않았다고 얘기하시다가 뭔가 울컥하셨는지 글썽이다 눈을 비비셨다. 나중에 엄마에게 내 표정이 너무 간절해 보여 그랬다는데 그때 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열무가 곧 떠날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을 거다. 이후 한 달도 되지 않아 열무가 떠났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말은 모호하다. 그 다리를 건넌 후에는 어디로 갔을까. 열무가 댕댕이별에 간다는 말도 석연치 않다. 열무는 강아지들과 별로 친하지 않았다. 뭐 다른 친구들이 사교성 있게 잘 대해준다면 열무도 잘 적응하겠다만... 아프지 않은 열무는 한 성깔 해서... 친구들이 넓은 아량을 베풀어 열무와 잘 어울려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어디서든 행복하게 잘 지내면 좋겠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음 생이 있다면 이번 생보다 덜 아프고 더 행복하길. 될 수 있다면 다시 만나서 이번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만나길. 내가 더 잘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항상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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