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마율 Dec 13. 2021

불온에서 시작해서 불온으로 끝나는 글

영화 <불온한 당신>(2017)

영화 <불온한 당신>
개요 : 다큐멘터리 / 한국 / 99분
감독: 이영
출연: 이묵, 논, 텐, 이영
제작년도 : 2015년 (국내 개봉 2017년)

 


 불온이 무엇일까? 사전적인 의미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판단이나 행동 따위가 사리에 어긋나지 아니하고 알맞다.’라는 온당하다의 반대말, 두 번째 의미는 ‘사상이나 태도 따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질’이다. 만약 사리에 맞는 판단으로 통치 권력과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불온한 걸까? 스스로 사리에 어긋나지 않은 판단으로 체제에 순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온당한 걸까?


영화 <불온한 당신> 포스터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마치 사회가 말하는 ‘불온한 당신’과 그 ‘불온’을 말하는 사람을 보여주면서 정말 누가 불온한 건지를 물어보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불온’ 하지 않은 사람이 도대체 누가 있을까. ‘불온하다’라는 단어 자체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그 뜻에 해당하는 대상이 가변적인지, 사전적 의미로는 영화에 나온 모든 이들이 다 불온하다.

 법과 통치 체계 안에서 살며 사리분별을 잘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얼마나 평온한 삶일까. 다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적어도 법과 사회 체계를 만들고 지키는 사람 (백인, 남성, 자본주의의 승리자)들이 되어야만  불온해지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이치에 맞는 도리 있는 판단을 할까. 불온하지 않은 존재는 신밖에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이 단어를 만들던 당시에 두 가지 의미 모두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던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에게는 첫 번째 의미는 부정적이나 두 번째 의미는 긍정적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태도가 불온함을 조금씩 줄여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꺼림칙한 부분은 거슬리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로 몰고 태극기 휘날리시는 분들께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어느 극단으로 사람들을 몰고 가는 분들께서 자신을 불온한 체제에 맞서고 있는 온당한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은 신을 찬양하지만 스스로 신처럼 군림하여 다른 사람들을 쉽게 평가한다. 그들은 착각했다. ‘불온’은 개인이 개인에게 내리는 평가가 아니라 사회가 개인에게 내리는 평가다.

 ‘불온’은 굉장히 지배적이다. 불온한 사람들이 말하는 ‘불온한 사람’들은 불온한 국가로부터 기본적인 생명권도 지켜지지 않는다. 사랑을 인정받고 서로가 서로를 지킬 권리도 거부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잡히지도 않는 ‘불온함’을 명분 삼아 ‘불온’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통치 체계 안에 잡아넣으려 한다.


영화 <불온한 당신> 스틸컷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만약 두 번째 의미의 불온한 사람들이 승리해 첫 번째 의미의 불온한 사람들이 된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영화에 등장한 ‘불온한’ 이욱 선생님이 굳이 바지씨가 아니었어도 되고, 바지씨도 치마 입고 치마씨도 바지를 입을 수 있었다. 넥타이 매고, 자동차 시동 걸고, 능동적인 돈벌이를 하고, 주기적으로 결속이 강한 모임에 참가해도 그가 ‘남성스러운’ 여성이 아닌 그냥 여성으로, 사람으로, 개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누군가에 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리기 위해,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굳이 답답하게 가슴을 천으로 묶고 다닐 필요도 없다. 사는 지역의 남성들에게 형님, 행님으로 불리면서도 여성인 것이 전혀 숨길 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 거주하든지 자신이 여성임을 다 알고 있는 자신의 고향만큼 편안하다.

  불온한 이들이 모여 만든 불온한 세상이다. 아니, 세상이 만든 불온한 당신들로 세상은 가득 찼다. 늘 내가 불온했으면 좋겠다. 두 의미를 넘나들며 자신의 온당함을 밝히는 불온한 당신들과 함께하며 다른 형태의 불온한 세상이 도래하는 걸 지켜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장센은 강렬하게, 사회상은 냉철하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