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소소한 일상 속에서 걸음 채워 넣기
우리는 어디를 가든 먼저 주차부터 걱정한다. 목적지 바로 앞이면 마음이 놓이고, 조금만 떨어져도 불편이 느껴진다. 마음에 드는 자리를 찾지 못하면 골목을 몇 바퀴나 돌고, 그 과정에서 작은 짜증들이 자잘하게 쌓인다. 사실 멀리 세우고 걸으면 해결될 일인데도, 우리는 그 몇 분의 걸음을 괜히 손해처럼 여긴다. 마치 걸어가는 동안 시간이 새어 나간다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걷기가 습관이 되면 이게 달라진다. 가깝든 멀든 상관없다. 걸으면 되니까. 주차 자리를 찾느라 세 바퀴를 돌 이유가 없다. 빈자리에 세우고 걸어가면 된다. 주차 자리를 찾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빨리 주차하고 걸어가는 시간이 더 짧은 경우도 많다.
재미있는 경험이 하나 있다. 매일 차로 다니던 길을 한번 걸어보는 것이다. 출근길이든 단골 카페까지의 길이든, 수백 번은 지나쳤을 길인데 걸으면 완전히 다른 길이 된다. 이런 가게가 있었나. 이 골목이 여기로 이어졌나. 저 건물 1층에 꽃집이 있었나. 시속 60킬로미터로 지나치거나 운전에 집중하느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 시속 4킬로미터에서는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같은 길인데 처음 걷는 길 같다. 꼭 어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한번 걸어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익숙한 동네가 새로워진다.
걷기가 습관이 되면, 어딘가를 갈 때도 달라진다. 지도 앱을 켜서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해본다. 30분이면 갈 수 있겠구나. 그러면 차 대신 걸어간다. 그러다 보면 슬슬 기준이 올라간다. 40분도 걸을 만하고, 50분도 해볼 만하고, 어느새 1시간 이내는 거의 걸어다니게 된다. 이어폰을 꽂고 언더스탠딩 같은 팟캐스트를 들으며 걸으면 1시간이 금방이다. 아무것도 듣지 않고 그냥 걸어도 좋다. 목적지까지의 시간이 소모가 아니라 하나의 짧은 도보 여행이 된다.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걷거나, 버스 대신 두세 블록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동 안에 걷기가 들어오면, 어딘가로 가는 길 자체가 하루의 일부가 된다.
걷기에는 실패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 잘못 든 골목이 오히려 새로운 발견이 되고, 돌아가도 되고, 멈춰도 되고, 잠시 우회해도 괜찮다.
이런 습관은 사무실 안에서도 이어진다. 나는 내 오피스에 누가 물건을 가져다주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미안해서가 아니다. 그 몇 분의 걸음을 내가 직접 쓰고 싶어서다.
오전 내내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목이 굳고 어깨가 올라간다. 눈은 뻑뻑해지고,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그때 일어나서 복도로 나가면, 처음 몇 걸음에서 숨통이 트인다. 아까까지 머릿속에서만 돌고 있던 문제가 발걸음 사이로 잠시 비켜난다. 대단한 깨달음은 아니다. 그냥 머리에 바람이 한 번 통한 정도다.
이런 짧은 걸음이 하루에 한두 번만 있어도, 하루가 끝날 때의 상태가 다르다. 여덟 시간을 의자에 붙어 있다가 퇴근한 날과, 중간에 몇 분이라도 걸은 날의 차이는 의외로 크다. 몸이 덜 뻣뻣한 것도 있지만, 머리가 덜 탁한 게 더 크다.
이건 기분 탓이 아니다. 2022년 루마니아 웨스트 티미쇼아라 대학의 패트리시아 올루가(Patricia Albulescu) 연구팀은 22개 실험, 총 2,335명의 데이터를 종합해 업무 중 10분 이내의 짧은 휴식이 피로를 줄이고 활력을 높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특히 창의적인 작업이나 반복적인 업무 뒤에 효과가 두드러졌다. 10분이 아니라 5분이어도 효과가 있었다. 핵심은 화면에서 눈을 떼고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복도를 걷는 몇 분이 머리를 리셋하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과학이 뒤늦게 확인한 셈이다.
걷기가 익숙해지면 도착의 의미가 달라진다. 빨리 가는 것보다 걸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쁘지 않다. 약속 장소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내려도 불편하지 않고, 지하철을 하나 잘못 갈아타도 당황하지 않는다. 더 걷게 됐을 뿐이니까.
이건 성격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걷기가 반복되면 몸이 움직이는 것 자체에 익숙해진다. 일정한 리듬으로 발을 내딛는 시간이 쌓이면, 예상치 못한 상황이 위협이 아니라 그냥 상황이 된다. 사소한 변수들 앞에서 덜 흔들리게 되는 것. 걷기가 가져오는 변화는 대부분 이렇게 작고 느리다.
특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지 않다. 장비도, 계획도, 의지도 필요 없다. 신발을 신고 문을 열면 된다. 그것만으로 하루가 조금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