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것을 만든 동물

1.4. 인간은 왜 낯선 것을 탐색하는가

by 성효경

앞서 우리는 호기심이 생존 본능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강이 마르고 숲이 사라지는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한 집단이 살아남았다. 도파민이 새로움에 보상을 주도록 뇌가 설계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굳이 갈 필요 없는데도 안 가본 길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 이미 충분히 알고 있는데도 더 알고 싶은 욕구. 아무런 실용적 이익이 없는데도 동굴 깊은 곳까지 걸어 들어가 벽에 그림을 그리는 행위. 이런 것들은 생존 본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간의 호기심에는 배고픔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면, 선사 시대의 벽화 앞에 다시 서 볼 필요가 있다.


벽에 남은 낯선 충동

프랑스 남부의 쇼베 동굴, 라스코, 스페인의 알타미라. 이 동굴들의 벽면에는 수만 년 전 인간이 남긴 그림이 있다. 쇼베에서는 동굴사자와 코뿔소, 곰, 표범 같은 포식자들이 벽을 지배하고, 라스코에서는 거대한 들소와 말이 천장을 가로지른다. 알타미라의 들소는 벽면의 굴곡을 이용해 입체감까지 갖추고 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 그림들을 단순한 사냥 기록으로 보기는 어렵다. 쇼베의 벽에 그려진 동물 대부분이 실제로 사냥하던 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다면 이들은 왜 그렸을까. 생존에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이 행위를,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복했을까.

많은 고고학자들이 이 그림에서 읽어내는 것은 상징적 사고의 출현이다. 벽화를 그린 사람들은 눈앞의 동물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의 이미지를 벽 위로 옮기고 있었다. 실제로 본 장면을 기억에서 꺼내고, 그것을 상징적 형태로 변환하고, 벽이라는 매개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다.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 발견된 10만 년 전의 기하학적 무늬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내면의 사고를 외부 매체에 새겨 넣은 흔적이라는 것이다. 관찰에서 기억으로, 기억에서 상징으로, 상징에서 공유로. 이 과정은 먹이를 찾는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탐색이었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바깥 세계뿐 아니라 자기 머릿속도 탐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흙을 불에 넣은 순간

이 변화가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의 장면을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모닥불 옆에서 흙을 만지고 있다. 젖은 흙은 손안에서 어떤 형태든 만들어졌다. 동물의 형상, 사람의 몸, 혹은 아무 의미 없는 덩어리. 하지만 말리면 부서졌다. 비가 오면 녹았다. 그러던 어느 날, 빚어놓은 흙덩이가 모닥불 속에 굴러 들어갔다. 꺼내보니 달라져 있었다. 흙이 돌처럼 단단해진 것이다. 불에 대한 경험과, 흙의 물성에 대한 감각이 우연히 만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이 우연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흙을 빚고, 의도적으로 불에 넣기 시작했다. 체코의 돌니 베스토니체 유적에서 발견된 약 2만 9천 년 전의 인물상은 이렇게 탄생했을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자기다. 이 유적에서는 가마터와 함께 2천 점이 넘는 점토 조형물이 출토되었다. 한두 번의 우연이 아니라, 반복적이고 의도적인 생산이었다는 뜻이다. 흙에 대한 지식, 불을 다루는 기술, 그리고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의 손 안에서 만나,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던 물질이 태어난 순간이었다.

영국 레딩대학의 고고학자 스티븐 미센은 이런 순간에 주목했다. 1996년 《마음의 선사학(The Prehistory of the Mind)》에서 그가 내놓은 핵심 개념은 '인지 유동성(cognitive fluidity)'이다. 미센에 따르면, 초기 인류의 마음에는 서로 분리된 인지 영역들이 있었다. 도구를 다루는 기술적 지능, 동식물의 습성을 읽는 자연사적 지능, 집단 내 관계를 관리하는 사회적 지능, 그리고 언어적 지능. 이 네 영역은 오랫동안 각각 독립적으로 작동했다. 미센은 이것을 성당에 비유했다. 각각의 예배당은 제 기능을 훌륭히 수행하지만, 예배당 사이의 벽 때문에 서로의 공간으로 넘어갈 수 없다.

흙을 불에 넣은 순간, 그 벽에 금이 간 것이다. 기술적 지능과 자연사적 지능 사이의 칸막이가 무너지면서, 한쪽에서 쌓인 지식이 다른 쪽으로 흘러들었다. 약 6만 년에서 3만 년 전 사이, 상부 구석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일이 급격히 늘어난다.

Gemini_Generated_Image_rkpvlhrkpvlhrkpv.png 인류 역사 최초의 도자기, 안료, 피리의 발명

또 다른 장면을 상상해보자. 누군가가 강가에서 주운 붉은 돌덩이를 갈고 있다. 적철석이라 불리는 이 광물은 갈면 갈수록 선명한 붉은 가루가 나온다. 처음에는 우연이었을 것이다. 돌끼리 부딪히다가 손에 묻은 가루가 피부 위에서 눈에 띄는 색을 만들었다. 누군가는 이 가루를 동물 기름과 섞어 반죽을 만들었고, 그것을 자기 몸에 발랐다. 남아프리카 블롬보스 동굴에서는 10만 년 전에 만들어진 안료 제작 도구가 발견되었다. 전복 껍데기 안에 적철석 가루, 뼈 조각, 숯, 그리고 액체를 섞어 안료를 만든 흔적이었다. 광물에 대한 지식과 혼합 기술,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몸을 꾸민다는 사회적 감각. 이 세 가지가 한 사람의 행위 안에서 만난 것이다. 먹지도, 입지도, 무기로 쓰지도 못하는 붉은 가루를 왜 그토록 공들여 만들었을까. 그것은 생존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욕구였다.

비슷한 시기, 누군가는 독수리의 날개 뼈에 구멍을 뚫었다. 속이 빈 뼈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소리가 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독일 홀레 펠스 동굴에서 나온 이 피리는 약 4만 년 전의 것으로,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악기 중 하나다. 새의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 바람과 소리의 관계에 대한 경험, 그리고 구멍을 뚫는 기술. 이 세 가지가 한데 모이지 않았다면 피리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이 피리가 연주되었을 때, 소리는 혼자 듣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닥불 앞에 둘러앉은 사람들이 함께 들었을 것이고, 그 순간 음악은 사회적 경험이 되었다.

이렇게 융합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점토 인물상은 단순한 조각 연습이 아니라 집단 안에서 신앙이나 지위의 상징이 되었다. 동굴 벽화는 아름다운 그림을 넘어 공동체의 기억을 저장하고 전달하는 매체가 되었다. 뼈 피리의 소리는 의례의 일부가 되었다. 기술과 자연 지식의 융합이 사회적 지능과 만나는 순간, 예술이 태어나고 의례가 생겨났다. 인간은 눈앞의 세계에 반응하는 동물에서, 아직 오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탐색이 목적이 되는 순간

까마귀도 새로운 물건을 쪼아보고, 문어도 낯선 물체를 더듬어본다. 하지만 흙을 불에 넣어 돌로 바꾸고, 붉은 가루를 몸에 발라 자신을 꾸미고, 독수리 뼈에서 음악을 꺼내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이 사람들은 배가 고파서 만들고 그린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지식이 연결되는 경험 자체에서, 머릿속에 있는 것을 바깥으로 꺼내는 행위 자체에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인간이 만든 가장 오래된 것들은 대부분 쓸모없는 것들이다. 가장 오래된 도자기는 그릇이 아니라 인물상이었고, 가장 오래된 안료는 도구의 부식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몸을 꾸미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가장 오래된 악기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리 자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생존에 필요한 것보다 생존에 불필요한 것을 먼저 만들었다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의 호기심이 이미 생존의 틀을 벗어나 있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호기심은 배고픔의 도구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인간에게서 그것은 전혀 다른 것으로 변모했다. 탐색의 보상이 먹이에서 앎으로, 앎에서 창조로 바뀌었다. 세계를 다시 보고, 다시 그리고, 다시 만드는 힘. 인간을 인간이게 한 것은 바로 이 전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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