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멈춘 시대

1.5. 멈춘 발을 다시 뗄 수 있을까

by 성효경

인간은 600만 년을 걸었다. 두 발로 서서 아프리카 초원을 횡단했고, 빙하기의 대지를 넘었고,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서 도착했다. 걸으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걸으면서 도구를 만들었고, 걸으면서 벽에 그림을 그리고 흙을 빚어 불에 넣었다. 인류의 모든 시작은 걷는 발 위에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멈췄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말하기 어렵다. 자동차가 걸음을 대신하기 시작한 20세기 초일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가 계단을 지운 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이었던 건 아마 21세기 초, 손 안에 화면이 들어온 순간이었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역사상 처음으로 멈춘 채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앉아서 여행하고, 누워서 사람을 만나고, 손가락만 움직여 세상의 끝까지 닿을 수 있는 시대. 걸을 이유가 사라졌다.

그 결과 인간의 몸에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하드자(Hadza)족은 지구에 남은 마지막 수렵채집 공동체 중 하나인데, 이들의 하루 평균 보행 거리는 약 9.5킬로미터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가 걸어온 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미국 성인의 하루 평균 보행량은 약 4킬로미터,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2024년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18억 명이 권장 수준의 신체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비율은 2010년 이후 5%p 나 증가했다. 수백만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걸었던 종이, 불과 한두 세대 만에 걸음을 멈춘 것이다. 하지만 몸만 멈춘 게 아니었다. 마음도 멈췄다.


멈추면 감정이 썩는다

화가 나면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슬프면 피드를 스크롤한다. 불안하면 댓글을 읽는다. 감정이 생겼을 때 우리가 하는 첫 번째 행동은 더 이상 일어나 걷는 것이 아니라, 화면을 켜는 것이다.

문제는 화면이 감정을 해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화면은 감정을 증폭시킨다. 남의 행복을 보면서 내 불행이 선명해지고, 남의 분노를 읽으면서 내 분노가 커진다. 감정이 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맴돈다. 신경과학에서는 이것을 반추라 부른다. 같은 생각이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도는 것. 왜 그랬을까, 어떻게 해야 했을까, 왜 나만 이런가. 반추는 몸이 멈춰 있을 때 빠져들기 쉽다. 움직임이 없으면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게 돈다.

인간의 감정은 오랫동안 움직임과 함께였다. 두려우면 달아났고, 분노하면 싸웠고, 슬프면 떠났다. 감정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바깥으로 나갔다. 그런데 지금, 감정이 나갈 통로가 막혔다.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동안 감정은 이동할 공간을 잃었다. 머릿속에 가둬진 감정은 발효된다. 불안은 불안을 낳고, 슬픔은 슬픔을 깊게 파고, 분노는 분노를 먹으며 자란다.


걷기가 주는 우울증 감소 효과


다시 걷기

2024년 홍콩중문대 공중보건학부의 쉬쯔쥔 교수 연구팀은 걷기와 정신 건강의 관계를 다룬 75개의 무작위 대조 실험을 모아 메타분석을 실시했다. 참가자는 총 8,636명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설계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걷게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한 시간씩 걷게 했다. 실내 트랙을 걸은 사람도 있었고, 공원을 걸은 사람도 있었으며, 혼자 걸은 사람도 있었고, 여럿이 함께 걸은 사람들도 있었다. 실험 결과 걷기 조건에 상관없이 걷기를 한 그룹은 걷지 않은 그룹에 비해 우울 증상과 불안 증상이 유의미하게 줄었다.

같은 해 호주 퀸즐랜드대학의 마이클 노에텔 교수 연구팀이 영국의학저널(BMJ)에 발표한 또 다른 대규모 분석도 비슷한 결론을 보여준다. 218개 연구, 14,170명의 데이터를 종합한 이 네트워크 메타분석에서 걷기와 조깅은 일반적인 치료(약물이나 상담 없이 경과를 관찰하는 것)에 비해 우울증 증상을 중간 수준 이상으로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걷기의 형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걸었느냐, 걷지 않았느냐였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걸음은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반복이다. 트라우마 신경과학자 브루스 페리에 의하면 극도의 불안 상태에서 인지적으로 안정된 상태로 변화하는데 리듬이 도움을 준다고 한다. 반복적 리듬은 뇌간의 감각 네트워크를 자극하고, 이를 통해 상위 뇌 영역이 다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다. 걷기가 그중에서도 특별한 이유는, 가장 낮은 진입 장벽으로 가장 안정적인 리듬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명상을 배울 필요도, 악기를 다룰 줄 알 필요도 없다. 한 발을 내딛으면 된다.

일정한 속도로 걸을 때 뇌의 알파파(8~12Hz)가 증가한다.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깨어 있는 상태의 뇌파다. 이 상태에서 뇌는 외부의 위협을 감시하는 모드에서 벗어나, 내부를 정리하는 모드로 전환된다. 반추에 갇혀 같은 자리를 맴돌던 생각이 느슨해지고, 감정이 비로소 움직일 공간을 얻는 것이다.


쓸모없는 걸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슬픔이든 분노든 불안이든,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일어나 걸은 적.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걸었는데, 돌아왔을 때 조금은 숨을 쉴 수 있게 된 적.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한다. 마치 몸이 방법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 걸음에는 목적지가 없다. 아무 데도 도착하지 않을 걸음,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을 걸음, 아무 생산성도 없는 걸음. 그런데 그 쓸모없는 걸음이 사람을 살린다. 쓸모없는 걸음은 쓸모없는 것을 만드는 행위와 닮아 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문밖으로 나서는 그 걸음은, 어둠 속 동굴로 걸어 들어간 발걸음과 같은 것이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사람의 뇌 안에서는, 3만 년 전 흙을 불에 넣어본 사람의 뇌 안에서 일어난 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서로 연결되지 않던 것들이 만나고, 갇혀 있던 것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없던 것이 생겨난다. 다만 이번에 생겨나는 것은 도구도 예술도 아니다.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인류는 600만 년 전에 두 발로 섰다. 걸으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걸으면서 세계를 탐색했고, 걸으면서 쓸모없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걸음을 멈춘 시대에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도 결국 같은 것이다. 마음이 무너질 때,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일어나서, 문을 열고, 걸으면 된다는 것을. 그 본능은 600만 년 동안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월, 수, 금 연재
이전 05화쓸모없는 것을 만든 동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