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그들은 진심이라면?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이

by 오늘의 나

파킨슨 (+치매 약간)으로 아픈 아빠가 자주 오라며 이렇게 말했다.

'너무 적적해.'


외로움 때문이었다. 엄마는 발목골절로 한동안 병원에 있었는데, 퇴원하는 날 그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왜냐하면 집으로 돌아가봤자, 이기적인 어기적 어기적 다니는 남편과 계속 마주해야 하는 상황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Big E 성향이라 아무하고도 말을 잘하고, 6인병동에서도 그런 친교가 마음에 들었던 듯하다. 마치 내가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큰애 하고 너하고 나중에 함께 살면 좋을 텐데...'

'혼자된 큰 이모는 막내아들과 같이 살잖아. 다행이지'


가끔 엄마와 좋은 데서 커피를 마시면서, 진지하게 내 의사를 전달한 적이 있다.

'엄마, 난 엄마랑 같이 안 살아. 그렇게 여러 번 말해도 난 바뀌지 않을 거야. 대신 근처에 살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이렇게 만나요. 그게 서로에게 좋아.'

'큰 이모와 같이 사는 그 오빠는 그래서 결혼 못하는 거야. 큰 이모만 좋지, 그 오빠가 과연 좋을까?'

그때 엄마도 수긍했다.


그러면서도 인지기능이 점점 나빠져서 그런지 계속 유사 의사표현을 진행 중이다. 그렇다. 우리 부모는 그런 사람들이고 이미 미워하기에도 너무 늙었다. 이젠 가여움만 남았는데, 그것을 빌미로 위와 같은 바람을 필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누구네는 가족이 한 아파트 같은 동에 모여산 다더라...'


그런 '결과'가 성립하려면, 그전에 최소 어떤 부모였어야 하는지, 어떤 준비가 있어야 하는지 그들은 그저 '생략'한다. 그들에게 그들이 바라는 것들은 '결과'가 아니라, 과거를 생략한 희망사항인 것이다. 그들에게 과거는 없고 현재와 미래만 있다. 과거를 망각한 그들에게 그들의 희망사항은 진심이다.


진짜 내가 누군지 모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건지 그들은 모른다. 아니, 정확히 알면서도 그런 말밖에는 할 말이 없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식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조각도 나누려 하지 않던, 자식들은 1도 믿을 게 못되기 때문에 자신들의 노후 준비에만 열심이던 그들이.


노후 준비에만 포커스 되어있던 그들의 경제사항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 다만, 아무도 믿지 못하는 아빠는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 알량한 유산을 어찌할 바 모르고 있고, 엄마는 아빠를 믿지 못하고 딴 주머니를 차는 통에 집 반찬은 늘 나물에 번데기, 뭐 이런 식이었다. 냄비나 옷은 어디서 줒어오거나 다이소에서 산,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얇은 스탠냄비, 뭐 그런 식이다. 청소는 연례행사.


부정부패가 만연한 망한 정부 같은 어둡고 더러운 집.

내가 정작 필요했을 때, 단 100만 원도 빌려주길 거부한 사람들. (예상외로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런 집을 일군 부모가, 더 있어달라고 한다. 자고 가라고 한다.


적적해질 거란 생각을 못한 부모.

아파질 거란 생각을 못한 부모.

자식일 필요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그래서 사람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그들은


내 부모다.


그들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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