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돌봄을 지속하는 법

효율과 시스템의 중요성

by 오늘의 나

다시 말하지만, 난 부모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그런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늙고 아픈 부모에 대해 기본적인 책임감을 느끼는데, 그들도 내가 어렸을 때는 기본적인 것들을 다 해줬다고 믿어 의심 치는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은 나를 사랑해서 그랬을까? 책임감이었을 것이다.


아마 내 성격이 그들의 개인성에 맞았다면 그들은 날 사랑했을 수 있었겠지만, 내가 느낀 건 사랑이라기보다는, 가장 기본적인 책임 정도였다. 어렸을 때도 그런 생각은 했다.

'해 준 건 별로 없으면서 바라는 건 되게 많네'


가령, 고 3 때 TV 소리를 줄여달라고 하면, 엄마가 이런 식이었다.

'집에서 굿을 해도 서울대 갔다더라'


가령 이런 식의 역사를 가진 가족관계에서 부모 돌봄을 하는 자식은 어떤 시스템과 마인드를 가져야 할까? 물론 막상 만나면 서로 재밌게 웃고 떠들긴 하지만 근본적인 부분은 보기 싫을 때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정리는 나에게 참 중요한 부분이다. (큰언니의 즉흥적이고 순수한 돌봄과 달리)


시스템

- 가족소통: 가족 내 커뮤니케이션 우선순위/원칙 및 돌봄 일정 공유, 각자 가능한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함

- 자동화: 제2 밥솥 구입(집에 아무도 없는데 밥 떨어지면 아빠가 버튼만 누르도록 함), 자동종료되는 슬로 쿠커 구입, 찌개거리 냄비에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두기

- 외부 도움받기: 아빠 장기요양등급을 통해 정부지원받기 (등급 선정 시, 아빠 상황을 통해 엄마 전기 침대 및 정부도우미 80% 할인 가능)


마인드

- 낮은 기대감 (부모의 도덕적 수준을 고려하여 법치 쪽인지 유가 쪽인지 결정해야 마음에너지 절약 가능)

- 논리적 접근 (아빠가 재정정보 공유 안 하면 더 이상 재정정리 도움 못준다고 말했음. 아빠가 엄마 병원왕래에 도움을 안 주면 앞으로 엄마도 아빠 병원에 갈 수 없을 것임 등)


다시 말하지만, 내가 부모님 댁에 가서 권력을 행사하고, 공포분위기를 조장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메인이 되는 돌봄 리더가 특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쓸데없는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부모의 성격에 상관없이 서로 인간적인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기본적인 마음의 결정과 보조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상황은 이렇게 미리 생각해두지 않으면 점차 나를 갉아먹다가 파멸시킬 수도 있는 쓰나미 같은 위험한 상황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하지 못하고, 나는 스스로 지킬 수밖에 없다.


SNS에서는 나르시스트, 소시오패스, 빌런을 무조건 피하라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닌, '사용'하려는 의도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성향의 부모가 아파 누워 있다면, 가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할 셈인가?


내게 정신적인 힘과 미리 마련해 둔 시스템이 없다면, 소름 끼치는 상황일 것이다.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때, 참신한 생각이 생겨나고 궁리하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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