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제 린저의 <삶의 한가운데>를 읽고
이 책은 출간 당시 ‘니나 신드롬’을 일으키며 독자들에게 삶의 본질을 사유하게 만든 작품이다.
책의 가독성이 좋은 이유
이 책은 인물들의 대화가 문단의 구분이 없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을 택한다. 서사처럼 이어진 실험적 글쓰기는 오히려 독자의 몰입도를 순식간에 높인다, 니나를 18년동안 사랑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를 읽는 언니의 행위는 곧 독자가 니나와 슈타인이 만났던 과거로의 여행을 하게 만든다. 동시에 언니와의 만남은 현재를 얘기하고있다. 작가는 액자구조 형식을 취해서 독자의 시선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삶의 사유를 하게 만든다.
삶의 두가지 사유방식
작가는 사유의 방법을 두가지 제시한다.하나는 독서이다. 책에서는 슈타인의 일기와 편지를 예로 들며 시대를 뛰어넘는 독서를 통한 깊은 성찰을 유도하고, 두번째는 현재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로 니나는 20년만나 만난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삶의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사유를 하게 한다.
삶 속에서 던져지는 질문들
작가는 사랑.열정.용기.죽음.자유.운명 등과 같은 굵직한 질문을 던진다. 독자는 책장을 넘길때마다 자연스레 ‘나는 지금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선다. 혹시 삶의 주변에서 서성이며 후회하고 있지는 않은지 ~
니나의 사유 1 ― 현재를 살아라
니나는 슈타인에게 묻는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나요? 왜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나요?” (p.369)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과거에 머물거나,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살고 있는가.
법륜스님의 비유가 떠오른다.
“방에 들어가기 전 신발을 살피라.”
우리는 방이라는 목적지만 보고 달려가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버린다. 그러나 가지런히 정리된 신발은 다시 나갈 때, 다시 돌아와 쉴 때 필요하다. 현재의 과정과 문제를 직시하지 않은 채, 미래만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니나의 사유 2 ― 운명을 거부하지 말고 부딪혀라
니나는 이렇게 말한다.
“단 한 번의 큰 충격보다는 몇백 번의 작은 충격을 받으려고 해. 그러나 커다란 충격이 우리를 전진하게 하는 거야.” (p.131)
충격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면 불행보다 더 큰 행복이 찾아온다. 시련은 증거가 되고, 극복의 흔적은 자신감이 된다. 태풍의 눈에 이르기 위해 우리는 폭풍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부모는 자식에게 고통을 피해가길 바라지만, 삶은 빛과 어둠을 함께 겪어야 단단해진다.
#드라마 <에스콰이어>의 한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한 소녀가 나비의 번데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비는 고치 안에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나오려 애썼지만, 끝내 힘이 부치는 듯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 소녀는 칼로 고치의 등을 조금 갈라주었다. 그러자 나비는 어렵지 않게 밖으로 나와 날개를 펼쳤다. 처음에는 푸드득 힘차게 날아오르는 듯했지만, 잠시 후 곧 창가에 앉아 더 이상 날 수 없었다.
왜일까?
나비가 고치 안에서 몸부림치는 과정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날개에 힘을 길러 자유롭게 날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었다. 소녀의 도움은 나비를 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날개를 단단히 만들 기회를 빼앗은 셈이었다.
삶도 그렇다. 누군가 대신 열어준 길은 일시적인 도움일 뿐, 스스로 부딪히고 버텨낸 경험만이 오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나 역시 오래전에는 부딪히기를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제 안다. 작가의 말대로 서른에 알았다면 내 인생의 궤적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니나의 사유 3 ― 삶의 질문을 던져라
니나는 오랜만에 만난 언니에게 질문을 던진다.
“지금 행복하니?”
“남편을 사랑하니?”
언니는 당혹스러웠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 덕분에 불행 없이 살아왔으니 행복한 게 맞겠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니나는 말한다. 행복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지금, 즉각적인 기쁨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그리고 사랑은 습관적인 감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나는 이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습관이 아닌 사랑이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나와 남편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치매 어머니를 모시며, 전셋집에서 자가주택으로 옮겨가는 동안 수많은 고된 시간을 함께 버텨왔다. 서로의 고단한 모습을 보며 어떻게 살아냈는지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자연스러운 감정이 쌓였다. 그것이 사랑의 빛깔 아닐까?
삶의 한가운데에서
루이제 린저의 문장은 삶을 관통하는 철학적 사유로 가득하다.
책장을 덮고 난 지금도, 니나의 물음이 가볍지 않게 마음속에 머문다.
“나는 지금, 내 삶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는가.”
태풍을 지나야 맞이하는 고요,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삶을 맛보고 이해하게 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