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로스 푸엔테스<아우라>를 읽고
당신에겐 아우라가 있습니까?
아니면 아우라가 있는 타인을 부러워한 적이 있나요?
당신이 보았던 아우라의 허(虛)와실(實)을 알고 계시나요?
카를로스 푸엔테스의 『아우라』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2인칭 시점의 글쓰기는 독자를 깊은 성찰 속으로 끌어들인다.
주인공 몬테로는 사학자구함 광고(허상)를 보고 많은 급여(욕망)에 이끌려 콘수엘로의 집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우라’라는 젊고 신비로운 여인에게 이끌린다. 아우라는 '실제가 아닌 허상'을 뜻한다.몬테로가 본 그녀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지만, 실은 노파 콘수엘로의 연장이자 환영에 불과하다. 인간이 종종 실체보다는 허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랑과 욕망은 허상의 힘에 쉽게 유혹되고 만다. 작가 푸엔테스는 이를 통해 우리에게 중요한 경고를 건넨다. 눈앞에 빛나는 것이 반드시 진실은 아니며, 욕망은 쉽게 거짓을 실체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우라라는 말은 본래 성스러운 후광을 뜻한다. 어떤 존재가 지금, 여기에서만 뿜어내는 고유한 빛, 쉽게 다가설 수 없고 대신 경외하게 만드는 현존의 기운. 우리는 그런 아우라를 사람의 눈빛, 목소리, 몸짓 속에서 느낀다. 단순한 외모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발산하는 고유한 광채인 아우라는 결국 타자가 보는 허상의 광채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 푸엔테스는 『아우라』에서 단순히 환영의 힘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에서 작가는 왜 자신이 이런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글쓰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성찰한다. 그는 허상과 실체 사이에서 진실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읽기와 쓰기’를 제시한다. 읽고 쓰는 행위는 단순히 지식을 쌓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진짜와 거짓을 구별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 구성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앞부분은 유혹과 경고, 뒷부분은 성찰과 해법이다. 우리는 허상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그 유혹에서 벗어나려면 현재를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반복적인 성찰, 즉 읽고 쓰기의 실천 속에 있다.
오늘날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미지와 광고, 가상과 환영 속에 산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분간하기란 쉽지 않다.진실은 규명하기엔 거짓보다 더 어렵다.그래서 거짓의 아우라에 속기 쉽다.
그러나 꾸준히 읽고 쓰며 스스로를 성찰하는 과정은, 우리를 허상의 안개 속에서 현실로 인도할 수 있다.
푸엔테스는 『아우라』와 「나 자신을 읽고 쓰기에 관하여」를 통해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는 허상의 유혹을 완전히 피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읽고 쓰는 순간마다 실체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그것만이 현재를 살아 갈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있다고.
당신은 셋 중에 어느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