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수고' 같은 삶이 '은하수' 처럼 빛날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by 하루

###아시아 최초 노벨 문학상,

설국의 첫 문장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애졌다.


이 첫 문장으로 유명한 책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었다. 이 터널은 단순한 통과 지점이 아닌, 삶과 죽음,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임을 깨닫게 한다. 국경은 두 세계를 가르는 경계이고, 터널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통로다. 시마무라가 설국을 찾는 이유는, 어쩌면 그 경계 너머에서 잠시 몸을 숨기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가끔 시마무라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눈의 고장에 사는 두 여인 고마코와 요코의 삶에도 저마다의 긴 터널이 있었다.



###'삼나무'를 닮은 두 여인, 고마코와 요코​


고마코는 게이샤로 일한다.

처음 게이샤로 팔려갈 때 배웅해 준 '유키오'를 잊지 못하고, 그의 병 치료를 위해 돈을 번다. 약혼한 사이라지만 그 관계에 사랑은 없는듯하다. 일기를 쓰는 고마코는 게이샤 일을 하며 소설을 열권이나 썼다고 시마무라에게 말한다. 하지만 의미 있는 결말을 맺지 못한 자신의 사랑 이야기처럼 그것마저 헛수고같이 느껴진다. 시마무라에게 “사랑받았다는 게 무엇인가요?”라는 그녀의 질문은, 무의미한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였을까?


요코는 간호사로 일했다. 그러나 그녀의 애인 유키오는 병약했다. 요코는 그를 위해 젊음을 바쳤지만, 유키오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모든 애씀은 공든 탑이 되고 만다. 유키오의 죽음 이후 그녀는 간호사의 꿈을 되찾기 위해 시마무라에게 도쿄로 데려가 식모로 써달라 부탁하지만, 화재로 허무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관찰자 시마무라


시마무라는 평온했던 도쿄의 생활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그는 1년에 한 번 설국을 찾았다.


그때마다 고마코를 만나게 되고, 고마코의 연정을 느낀다. 그런 고마코가 읽던 소설과 자신이 읽던 소설과 살짝 다른 분위기임을 느낀다. 아마도 고마코(유코)의 삶은 고단함 속의 허무함을 비유하고,


시마무라의 삶은 윤택함 속의 공허함을 나타낸다.



###삶은 '헛수고'일까?​


두 여인, '요코'와 '고마코'의 삶은 허무하기 짝이 없게 느껴진다. 꿈을 버린 채 한 남자를 위해 헌신한 요코, 사랑받지 못한 사람을 위해 시간을 바친 고마코. 두 여인이 있는 곳에는 늘 삼나무가 있다. “그대를 위해 살다”라는 삼나무의 꽃말을 닮은 두 여인의 이야기는 헛수고 같은 삶이다. 측은하고 안쓰러운 그녀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작가는 허무한 것 같은 두 여인의 삶 속에서 하얀 눈처럼 순수한 마음과 은하수 같은 아름다움을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닐까?



###눈바래기의 의미


설국에서는 눈 바래기를 할 수 있다.

눈 바래기란 시마무라 같은 도시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에 입는 모시옷을 겨울 동안 눈밭 위에 올려 빛을 쏘여주며 소독과 손질하는 느낌의 행동을 말한다.


그 눈 바래기를 하는 노동에 고달픈 여인의 삶을 모시옷을 입는 사람은 잘 모른다. 그렇다고 여인의 시간이 무의미하다 할 수 있을까? 그 수고로움으로 다른 이가 정갈해진 모시옷으로 시원한 여름을 날수 있는 것이다

눈 바라기가 바로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을까?



눈은 어두운 현실과 아픔을 잠시 덮어준다. 차가움은 오히려 감각을 무디게 하여 고통을 잊게 한다.

눈이 내리는 동안은 삶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지만, 봄이 오면 얼어붙은 눈은 녹고, 밑바닥에 숨겨져 있던 것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이 인생이다.


반복되는 일상, 이룰 수 없었던 꿈, 누군가를 위해 바친 헌신이 허탈하게 느껴져도, 지나고 나면 그것이 곧 삶이고, 때로는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 삶의 무게 '은하수'로 빛나다​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어둠의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경계가 있었기에 빛은 더 선명해지고, 건너간 세계가 특별해질 수 있다.


작가는 삶의 무상함을 얘기한다. 그 허무함 속에서도 삼나무처럼 견딘 고마코와 요코를 나는 떠올린다. 지금 긴 터널 한가운데 서 있는 당신, 이 시간을 헛수고라 여기지 않기를. 언젠가 이 어둠을 지나 눈부신 설국에 닿을 때, 그 길 위에서 버틴 당신이야말로 은하수처럼 빛날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