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내는 것만, 자신의 삶이 된다

양귀자ㅡ<모순>을 읽고

by 하루

1998년에 출간된 이 책을 나는 2026년 1월에 다시 읽었다. 어느덧 3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10년 주기로 젊은 독자층에게 다시 읽히며 베스트셀러로 역주행한다. 시간이 흘러도 반복해서 찾게되는 이유는, 세대가 달라져도 여성에게 결혼이 여전히 삶의 전환점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이 책을 읽던 시절의 나는 주인공 안진진에게 깊이 몰입해 있었다. 그녀의 고민은 곧 나의 고민처럼 느껴졌고, 결혼이 불행한 시간을 빠져나갈 비상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고 싶었던 시기였다. 내 온 생애를 걸고 살아가야 할 시간 앞에서, 이십 대의 나는 방황하며 삶의 선택을 미루고 있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흐른 지금, 결혼도 하고 나이도 지긋해진 채 이 책을 다시 읽으니 이제는 안진진이 아니라 그녀의 엄마와 이모의 삶이 눈에 들어왔다.


소설 속에서 이모는 엄마와 쌍둥이로 등장한다. 같은 시점에 태어나 같은 환경을 통과했지만, 두 사람의 삶은 결혼을 기점으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나 역시 결혼을 하며 변화를 겪었다. 부족한 형편 속에서 남편과 함께 검소하게 절약하며 집을 마련해야 했던 현실은 좀 더 계획적인 삶으로, 현실에 적응하는 삶으로 변화를 주었다.

그 사이 기쁜 일과 슬픈 일을 지나오며, 나 자신이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음을 느낀다. 달라진 모습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함께 섞여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 내적 성장을 경험하였다.


안진진의 엄마는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자신을 변화시키며 생애를 견뎌온 여성이다. 그 삶은 나의 친정엄마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 대신 여성으로서 면모를 지키기 보다 가장으로서 생계 유지를 위해 스스로를 삶에 적응하도록 변화시켰다. 원하는 모습일 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었을 당신의 삶을 회고할 땐 술한잔 기울면서 한 많은 이야기로 슬픔을 달래기도 하셨다.


반면 이모는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 부족함 없는 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그 안정은 그녀를 세계로부터 고립시켰고, 삶의 진폭을 차단했다. 이모의 불만은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나는 그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쌍둥이라는 설정은 단순한 인물 배치가 아니다. 삶은 행복과 불행을 함께 품고 음을 의미하는것이다.


안정된 삶이 주는 공허함에 이모는 행복하지 않았다

안정돼 보인다고 행복이라 할 수 있을까?

안진진의 엄마는 불행을 더 많이 경험하지만, 그것을 견디고 통과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단단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어려운 환경은 과연 불행이었을까?


어린 시절의 나는 불행의 한 단면만을 온몸으로 겪으며, 안진진처럼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행복만을 원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삶을 살아오며 알게 되었다. 삶은 단순한 감정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기쁨만으로 채워진 삶이 아니기에, 고난 앞에서 버텨낼 힘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그 겪어내는 시간속에서 행복도 느끼고 불행도 느끼며 삶은 계속될 뿐이다.


우리의 생은 희로애락이 겹겹이 쌓여 하나의 삶을 이룬다. 그리고 그 모든 색을 통과하는 일은 결국 각자의 몫이다. 안진진이 조건이 완벽한 영규와, 불완전하지만 사랑하는 장우 사이에서 갈등하는 장면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녀가 장우가 아닌 영규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모순을 닮은 삶의 면모를 직접 살아보기 위한 자의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첫문단의 안진진의 각오가 다시금 떠오른다

나의 온생애를 걸고서라도 살아야 해. 그리고 안진진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바로 온 힘을 다해 삶을 살아낸 사람만이 아는 눈물일 것이다.

눈물은 슬픔과 기쁨을 담고있다.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삶처럼

그래서 삶은 모순적이다. 정답도 없다.

다만 겪어내는 동안, 자신의 삶이 될 뿐이다.


삶을 어낸 사람만이 느낄 는 감정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