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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uff Aug 28. 2024

포스트모더니즘 윤리

넘쳐나는 시대에 즐비하는 여성 작가들의 이름과 여성 감독들의 이름들. 지금의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긴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희귀하다. 언제부터인가? 남성이 아닌 여성의 이데올로기로 남성들을 압박한 건? 여성 감독의 작품보다 여성 작가의 글을 본게 더 많으니 그것부터 말하고 싶다. 


여성 주체의 형식은 남성의 글과는 전혀 다르다. 시대를 갖고 통제하고 정의하고 압박하고 하나로 묶으려는 모더니즘적인 방식들이 강한 것은 분명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였다. 여성 작가들의 글들을 보면서 느낀 것들은 매우 솔직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르다. 일본의 90년대의 세기말적 분위기와 솔직한 자신에 대한 표현이 자기 경멸적이고, 나 처럼 살지 마시오라면, 유럽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회화의 표현들과 음악의 표현들이 민족 극복이거나 자기 경멸이라면. 


솔직해지자라는 것이 자기 긍정적 의미가 분명 아니다. 필자의 경우는 그렇다. 이 같은 경우는 분명 기독교적이다. 우리가 얼마나 치사하고 뻔뻔한 존재인지.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우리가 치사하고 뻔뻔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의 글과 영상들을 볼 때마다 느낀다. 우리 인간이 그렇게 만들어졌으니 그래도 된다고 말한다. 쇼펜하우어의 방식이 아니다. 


"한 사람의 인격과 그의 자유를 배려해주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윤리적인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 (...) 그저 말을 잘 듣는 애완견처럼 주어진 명령과 규범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인간은 결국 윤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피노자 당신은 틀렸어요. 인격과 자유를 배려해준다면 자신을 주인으로 인식 받고 싶어하는 애완견은 '세상 모든 것'을 자신의 권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애완견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주어진 명령과 규범을 거부하는 지금 사회는 자신을 긍정하려고 자신의 명령과 자신의 규범을 옳은 쪽으로 다스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희 민중계급에게는 더욱 취약합니다. 저희는 집단으로 모여서 자신을 긍정하는 맥락 편에 서있거든요. 싸움은 잦을 것이고 저희에게 솔직하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현실의 말은 줄어들고 텍스트는 늘어가요. 자신을 드러내놓고 솔직해지는 것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솔직해지는 편이 편합니다. 우리는 애완견이예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없어진 금은 끔찍합니다. 누구한테도 속박되려하지 않아요. 본인 자신한테도요.


포스트모더니즘은 최악입니다. 모든 것을 복제물로 상정하고 원본 같은 것은 없다고 주장하니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모두가 자신이 원본이 되길 원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본이라고 주장합니다. 윤리는 항상 자신의 맥락에서 출발해요. PC주의의 결과는 어떤가요? 모든 언어를 긍정하려다가 모든 언어가 부정 당하는 것은 어떤가요? 도덕과 윤리는 이 시대에 없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피해가 가면 안된다? 우리가 솔직해지는 것은 우리가 비인격적 대상이 될 인터넷 공간에서만이예요. 당신들은 언어의 세계에서만이라고 했어야 했어요. 텍스트와 현실을 구분했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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