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마무리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겨울의 어느 날
우리는 다시 남이 되었다.
이유는 말하고 싶지 않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1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사계절을 보냈던 우리가, 서로의 계절을 지나 이제는 남이 되었다.
안개 가득한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도 등대가 되어줬던 너였다.
우리가 보냈던 모든 밤에서 네가 내게 보였던 모습들은 내 초라한 모습까지도 비춰주었다.
우리가 보냈던 모든 밤에 보던 너의 모습은 이렇게 고고했었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뀐 뒤에,
나는 너를 잊었다.
나는 너를 잊었다.
나는 시원한 봄 저녁의 노을이 담긴
네가 찍은 풍경 사진을 좋아했었다.
이제는 아름다운 저녁 노을이 보이면
휴대폰을 꺼내 갤러리에 담아둔다.
너의 사진은 전부 지웠다.
나는 너를 지웠다.
바다를 무서워하던 내가
너라는 사람으로 인해 바다를 좋아하게 되었고,
우리가 여름에 자주 가게 된 바다가 보이던 그 레스토랑에서,
서로의 접시에 나누었던 그 피자를 우리는 좋아했었다.
집에서 그 피자를 만들다 몇 번은 태우기도 했다.
나는 너의 사진을 전부 태웠다.
너는 가을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었다.
나는 가끔 네가 선물해준 통기타를 연주하거나
혼자 걸으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나는 네가 쓰던 물건들을 전부 정리했다.
따뜻하게 구워지는 오븐 속의 빵처럼,
우리는 그 집에서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부풀어 올랐던 적이 있었다.
너의 손길이 닿아 예쁘게 꾸며진 내 집,
같이 밟았던 바닥,
함께 누웠던 침대는 이제 따뜻하지 않았다.
너와 사용하던 물건들은 전부 다른 것들로 채웠다.
화창했던 그해 봄,
내가 너라는 빛을 마주하던 날,
너는 그곳에 있었다.
네 웃음 하나에 조금씩 더 편하게 숨을 쉬었던 계절이었다.
시간이 흘렀다.
너의 숨이 내 품에 들어오던 순간들,
더운 날씨에도 서로를 식혀주던 순간들,
우리 사이엔 사랑밖에 없다고 믿었던 시간이었다.
화려한 가을이라고 느끼게 해준 너였지만,
낙엽이 떨어지고 흩어지기 시작할 때,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았었다.
영원은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우리는 조용히 화분을 내려놓았었다.
나는 말 그대로 너를 잊었다.
이제는 남이다.
다시는 만날 생각이 없다.
봄날의 네 미소를 보며 기뻐하던 순간이 있었다.
여름의 체온을 기억한다.
가을의 귓속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이
겨울에 내리는 눈 밑에 모두 덮였다.
꽃은 피고 지기에 아름다운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한다.
나는 너를 잊었다.
다시는 만날 생각이 없다.
만남이 있기에 이별이 있는 것이라고들 얘기한다.
나 또한 이 말에 동의한다.
힘든 감정들은
눈 밑에 덮일 수도 있다.
초가을의 햇빛에 그 눈이 녹아서 덮어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
여름 장마에 내리는 비들이 덮여있던 것들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봄에 피는 벚꽃이 휘날리며 그 빈공간을 조용히 채워줄 수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져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너를 잊었다.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짧고 덧없을 수도 있었던 나의 인생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바뀌게 되었다.
사랑을 하면서 모든 계절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준 순간이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이제는 이렇게 평범히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花(화)時(시) 花(화)影(영)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