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되기 전, 후

by 안녕제이

어릴 때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다.

잘못을 했거나,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로 혼이 날 때,

길고 긴 아버지의 훈육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훈육시간 길어질수록, 나는 다른 생각, 다른 행동을 하다가,

또다시 추가로 혼나곤 하였다.

그렇게 혼나고 내 방에 오면, 집에 있던,

내용은 읽어본 적 없지만, 그 제목이 인상적이었던,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다”라는 책의 표지를 보며,

철없이 마음속으로 복수를 외치곤 하였다.


이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중, 고등학생이 되어도 마음속 깊은 곳에,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반항심을 품고 있었던 듯하다.

혹시나 잘못을 하면, 아버지 눈치를 보게 되고.

아버지가 하는 말에는 반항심이 먼저 생기곤 하였다.


그 후, 시간이 30년이 지나고,

이제는 반대로 내가 아버지가 되어 커가는 첫째 아들을 보면서,

아버지가 계속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정말 사소한, 방에 떨어진 휴지 치우라는 나의 잔소리에

첫째 아들이 거실에 누워 있다가 이렇게 대꾸한다.

“아빠가 돼서 그 정도 해줄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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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남매의 셋째 딸이자 밑에 귀한 남동생이 있는 아내는,

가끔 이야기하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 당신은 첫째, 장손이고, 아버님, 어머님이 어릴 때부터 너무 다 해주셨어”


내가 곱게 자랐나?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다.

자라온 환경도 굉장히 안전하고 조용한 곳이었고,

중학교까지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곳을 다녀서,

거칠고 위험한 환경을 경험하는 시기가 꽤 늦었다.


내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정말 많이 해주신 것들이었다.

사람이 아쉬운 것만 기억한다고... 부족했던 점만 떠올랐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나의 유년 시절은 그렇게 부족하지 않은,

나름 풍족한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컴퓨터가 계속 있었고,

아버지가 쓰시다가 주신, CD, 테이프, 라디오가 되는 양옆의 스피커가 접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은 디자인의 소니 음악 플레이어 가 있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매년 여름휴가를 갔고,

패미콤, 게임보이를 아버지가 먼저 사주셨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슈퍼패미콤을 샀고,

이후 아버지가 일본 출장 갔다 오시면 삼국지를 사다 주셔서,

삼국지 게임의 맛을 알게 되고, 삼국지 60권짜리 만화책도 샀다.

고등학교 때는 MD (CD 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의 CD를 넣고 음악을 듣는 플레이어)를 사주셨다.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많은 것을 사주셨다


반면 내가 아버지께 해드린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기억나는 게 많질 않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어머니와 함께 보시라고 영화 티켓을 사드린 적이 있고,

핸드폰을 사드린 기억, 겨울에 당시 유행하던 아웃도어 패딩을 사드린 것,

그리고 내가 출장에서 올 때마다 술을 사 드린 기억이 난다.



지금은 더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아버지가 안 계시니 더욱 아쉽고 자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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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아버지도 안 사주신 것이 있다.


중학교 3학년, 학교 졸업 여행으로 스키장을 가게 되었다.

첫 스키장 여행, 기대반 걱정반이었다.

부모님은 잘 다녀오라고 스키복을 사주시고.

그렇게 나의 첫 스키장 여행이 시작되었다.


수련원이 아닌, 요리도 해 먹을 수 있는 곳을,

친한 친구들과 간다는 것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였다.


이후 중3 졸업 여행 때 혼자 스노보드를 탔던 친구의 유혹에 넘어가,

고1 겨울. 3명이서 스노보드를 타러 2박 3일을 다녀왔다.


한번 보드를 타고 빠져버린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나의 보드를 갖고 싶어

아버지께 스노보드를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자주 가던 동네 보드샵 사장님이 계속해서 나와 친구들을 꼬셨다.


당시는 1998년, 철없던 고등학생에게 IMF 가 무엇인가.


마침 당시에 어머니도 몸이 좋지 않아 수술을 하셨는데,

수술도 잘 되었고,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당시 5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보드는

아버지가 사주실 수 있다고 여겼다.


시간이 지나서 아버지가 나중에 해주신 이야기와

모든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당시는 아버지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 던 것으로 생각된다.


IMF로 아버지가 다니시던 회사는 다른 회사에 합병되어,

정리해고는 면했지만, 내부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이다.

어머니는 마침 암이 조기에 발견되어 수술을 받으셨고,

이 시기에 아버지가 담배를 끊은 것으로 기억한다.

추가로 아버지 형제 중에 한 분이 사고를 쳐서,

그 일 때문에 큰형으로써 법원을 왔다 갔다 하셨다.


이런 복잡하고 신경 쓸 일 많은 시기에,

보드를 사달라고 조르는, 아버지 맘을 몰라주는,

큰 아들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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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사주지 않았다.

(최근에 연락하는 것 때문에 전화만 되는 폰을 사줬다)

반 친구들 대부분이 스마트폰이 있다고 하고,

어떤 친구를 폴드폰, 어떤 친구는 아이폰인데,

자기만 없다며 투덜거린다.


그런 아들이, 여행 다닐 때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데, 이어폰이 없어서,

내가 예전에 쓰던, 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했던,

당시 면세점에서 나름 돈을 좀 주고 샀던,

소니 블루투스 이어폰 (안에 MP3 파일도 저장 가능)을 주었다.


지금처럼 작은 분리형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이어폰 두 개가 연결되어 있고 귀에 걸어야 하는 것이지만,

아들 은은 꽤 족하며 어디 갈 때 꼭 챙겨가고 잘 쓰고 있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으면 내가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잘 쓰던 것을 아들에게 주고, 아들이 잘 쓰고 있으니,

왠지 뿌듯한 느낌?


아마 아버지의 마음도 그러셨을 것이다.

무언가 사줬을 때, 아들이 잘 쓰고 좋아하면

본인이 더 기분 좋아지는 것. 일한 보람도 느끼고.


지금도 내가 생각했을 때 아들에게 쓸모없는 것들을 제외하면,

(뽑기 카드, 의미 없는 장난감, 몸에 안 좋은 음식 등)

마음 같아서는 대부분 사주고 싶다.


PS4 도 내가 먼저 사줬고,

어디 출장 갔다 오면 꼭 선물을 사다 주고,

함께 여행 가면 기념품을 꼭 한 개씩 고르게 해 준다.


아직 5학년이라, 가지고 싶은 게 많지 않고, 제한도 많지만,

더 자라고 나이가 들수록,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똑같이 나에게 사달라고 조르고 하겠지.


그리고 비록 내가 못 사주더라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도 나중에 나를 이해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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