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각자의 자리

by 안녕제이

어릴 적 만나서 같이 커온 오래된 친구는 너무 소중하다.

비슷한 동네에서 같이 크고 자란 이 녀석들은, 마치 형제 같았다.


방과 후에 서로 있는 돈 없는 돈 모아서,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을 사 먹고.

같이 오락실에 가고,

야간 자율학습 시간 때 몰래 만화책을 빌려보기도 하고.


처음 군대에 입대 후 편지를 쓸 때,

차마 부모님한테 얘기하지 못하는 힘듦과 외로움을

이 친구들한테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 친구 R

새벽 2시에 R에게 전화가 왔다.

자다가 받았는데, 울면서 나의 집 앞이라고 잠깐 나와달라고 하였다.

여자 친구가 바람을 핀 사실을 발견한 이 녀석은

영화와 같은 에피소드를 바람핀 여자 친구와 찍고 온 후,

이미 분노는 다 표출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허탈함과 슬픔을 내 앞에서 울면서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이 녀석의 허탈함과 슬픈 상황을 어떻게 위로의 말을 해줄지 몰라

나는 조용히 들어주고 같이 있어 줄 수밖에 없었다.



** 친구 K

군대를 가장 늦게 간 친구 K.

아마 이 친구가 상병쯤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나에게 전화를 해서,

동네에 있던 , 우리가 자주 가던 가게의 호두파이를 사서

이번 주에 꼭 면회를 오라고

당당하게 요구를 하였다.

나는 그럼 시간 되는 녀석을 불러서,

K가 요구한 호두파이랑 이것저것 사서 군말 없이 면회를 갔다.

평소 입이 짧고 마른 체형의 이 녀석은,

혼자 그 호두파이 한판을 다 먹어 버려서 내가 참 놀랐었다.


이 친구는 백일 휴가 때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나를 3시간을 보려고 내 부대로 면회를 오기도 했었다.



** 친구 M

대학교에 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M 은,

좀 무뚝뚝하고 심드렁한 스타일이라

주위에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이었다.

아마 부모님도 쑥스러워서 평소 표현을 안 하는 스타일로 기억한다.


돈이 부족한 대학교 시절,

아버지가 자기 책상 서랍에 있던 '솔'담배를 보고

마일드세븐으로 바꿔 놓고,

몸 생각해서 좋은 거 피라고 얘기를 해주셨다는 얘기를 하며,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을 우리한테 표현한 적이 있다.


반대로 이 친구가 힘든 상황이라 술을 많이 먹던 기간에

이 친구의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하셔서,

좀 같이 있어주고 위로해 주라고

부탁하시던 게 생각이 난다.



** 친구 T

대학교 때부터 혼자서 자취를 하던 친구 T는,

우리에게 자유로운 영혼으로 표현되는 녀석이었다.


우리 중 누군가 심적 부담이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이 친구의 집은 도피처 중의 한 곳이었다.

톡으로 '지금 간다'라는 간단한 말과 함께

차를 한 시간 정도 운전해서 이것저것 사서 그의 집에 가면,

고양이와 살던 그 녀석의 좁은 자취방은

무언가 잠시 외부 세계를 잊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서 영화도 보고, 이 친구와 많은 얘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좀 더 심적인 안정을 받고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 각자의 변화

너무 많은 추억이 있고 대화가 잘 통하던 이 녀석들과도

대학교를 졸업하고,

서로의 환경과 상황이 달라지고,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아 지면서,

생각과 관심사에 많이 차이가 생겼다.


그 차이가 처음에는 크지 않아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그 시간이 10년이 넘어버리자

그 차이가 좀 많이 커진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가족을 만든 친구와

싱글인 친구 와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이 되어 버렸다.


전에는 아니다 싶으면 쉽게

"야 그건 아냐"라고 얘기를 하던 것도

조금 더 배려를 해주려고 생각하게 된다.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차를 운전하는 나에게

오토바이는 차 운전자에게 위험한 존재이기만 했다.

하지만 오토바이와 차, 둘 다 타는 한 친구는

외국의 오토바이 전용 도로와 법을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였다.


" 한국 정부는 오토바이 운전자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가 없고,

이는 자동차 제조사들의 정치 쪽과 언론에 대한 지속적인 로비 때문이 아닐까?

결국 이런 것들이 대한민국 내 오토바이 대중화를 막고 있다고 생각해"

라며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여기서 서로의 이야기만 하면 무언가 싸움이 돼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이 친구들과 있는 톡방에서 어떤 주제가 나왔을 때

관심 있는 분야일 때는 대화에 참가해 같이 얘기를 하지만,

아닐 경우에는 조용히 그의 얘기를 보고 생각을 하면서

궁금한 부분에 대해 물어보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마 내가 경험 못한 어떤 직접적인 경험들이

이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현실로 받아들여져

내가 다른 얘기를 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경험하고, 깨달아서

지금 나한테 자리 잡은 어떤 기준이 되는 것이 있는데,

이걸 이 친구들이 건드렸을 때,

나도 쉽게 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한결같을 수도 없고,

서로의 위치와 환경에 따라 변화는 필수 적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나와, 10대, 20대, 30대의 나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이 녀석들과는 1년에 한 번 정도 다 같이 만나는 시간을 가진다.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지만,

이 녀석들은 나의 인생에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게 할 말 다 못하고 눈치 보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게 괜찮아?

라고 얘기할 수도 있지만,

할 말 다 하면서 유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최소한 이 녀석들과는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같이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누군가는 과거에 붙잡혀 있지 말고 앞을 향해서만 가야 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즐거웠던 추억을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건 좋은 것 아닐까?

나뿐만이 아니라 이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생각, 같은 입장을 가질 수는 없겠지만,

서로의 위치에서 서로를 (어느 정도는) 응원할 수 있는

입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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